보수단체 “검ㆍ인정 폐기” 집회
교육부의 역사 국정교과서 정책 방향은 그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상관없이 강행이었다. 연이은 촛불집회에도 선을 그었다. 이준식 부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 국정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교육이 목적이어서 정치 상황과 전혀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교육 정책이라는 상징성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1년 유예, 국정 검정 혼용 등 대안이 힘을 얻었다. 27일 이 부총리가 “여러 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도출했다”고 밝힌 건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절충안(내년 연구학교 지정, 2018년 혼용)은 결국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와 탄핵 정국 가속화로 인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명분 찾기 일환으로 ‘양다리’ 및 ‘시간 벌기’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인공호흡기를 대서라도 역사 국정교과서를 연명하겠다는 것”이라며 “정권이 연장되면 계속 추진하겠다는 일말의 기대가 반영된 결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1년 유예 발표가 유력했는데 전날 저녁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일단 내년 3월 교육현장에 보급하고 내년까지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이번 정부의 방침을 ‘사실상 강행’이라 규정하고,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부가 연구학교 선정이라는 당근을 내놓은 만큼 일선 현장에서는 역사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사들과 관리자들 사이에서 갈등과 분란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학생 자녀 둘을 둔 학부모 박모(49)씨는 “그나마 촛불집회에 나간 청소년들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해 이 정도 결정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연구학교로 선정되면 무조건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발표 직후 찬반 맞불 집회도 열렸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와 세종시ㆍ충청지역 시민단체들은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만과 꼼수로 점철된 국정교과서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보수 성향 학부모단체인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검ㆍ인정교과서 폐기 및 역사 국정교과서 배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좌파 교육감들은 정치 개입을 중단하고 국정교과서 배부에 협조하라”고 주장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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