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개정될 줄 알았다.”
올해 동물보호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았다. 5월 SBS 동물프로그램 ‘TV동물농장’이 이른바 ‘강아지 공장’의 충격적인 실태를 보도하면서 동물보호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펫샵에서 팔리는 개와 고양이들이 열악한 시설에서 물건처럼 ‘생산’된다는 것에 대해서 대충 짐작이야 했지만, 막상 TV 속 장면들은 어미 개 강제 교배, 불법 마약류 사용 제왕절개수술 등 참혹했다. 방송을 계기로 온라인에서 진행된 강아지 공장 철폐와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서명 운동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동참했고, 서명 인원은 3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 14건은 소관 상임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학대행위 처벌강화와 피학대 동물 긴급격리, 동물 생산업의 허가제 전환 등 고통 받는 동물들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 상임위에서 동물보호법이 계속 외면받자 농림부와 동물보호단체, 수의사들은 강아지 공장을 계기로 현재 등록제인 반려동물 생산업을 허가제로 강화하는 내용만이라도 상정해줄 것을 마지막까지 호소했지만 결국 논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강아지 공장 문제가 광범위하게 공론화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동물보호법 개정은 왜 올해도 찬밥 신세가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먼저 동물보호법 개정을 다루는 상임위가 농해수위인 점을 꼽고 있다. 동물을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축산업에 관심 있는 상임위가 동물 복지를 동시에 논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건복지위원회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실제 이번 법안소위에서도 동물보호법은 농업협동조합법, 산림보호법 등에 밀렸다.
반려동물 복지와 관련한 주요 법안을 발의한 표창원, 한정애, 이정미 의원 등은 모두 다른 상임위 소속이다. 14건 중 11건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해당 상임위 의원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운데 육견협회 등 동물보호법 개정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해당 의원들을 찾아가 반대농성까지 벌이는 바람에 의원들이 상정에 부담을 느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른 현안에 밀리고,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인해 14건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모두 다뤄지지는 못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덜하고 지지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생산업자의 허가제 전환과 학대행위 처벌강화 조항이 논의되지조차 못한 것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농림부는 이달 중순 생산업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반려동물 보호 및 관련 산업 육성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농해수위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없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지금도 학대와 방치에 내몰려 있는 수많은 동물의 생명을 위해 내년 2월 국회에서는 동물보호법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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