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동참’ 기류 변화
“가결될 수 있도록 최선”
비상시국위, 일부 이견에도
사실상 만장일치 최종 결론
“부결 땐 책임 뒤집어 써” 우려에
유승민이 물밑 설득 작업도
횃불로 바뀐 ‘촛불민심’에 새누리당 비박계가 태도를 선회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시점 표명 여부를 보고 판단하겠다던 ‘조건부 탄핵 동참’ 기류가 다시 ‘탄핵 직행’으로 바뀐 것이다.
비박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위원회는 4일 대표자ㆍ실무자 연석회의와 총회를 연달아 열어 박 대통령의 퇴진 시점과 관련한 여야의 합의가 없다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야권은 현재 “여야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실상 탄핵 참여로 방향을 명확히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비상시국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면 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상관없이 9일 표결에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도 즉각 하야를 원하는 촛불민심이 더 활활 타오르는 건 물론 새누리당으로까지 번질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 참여한 한 의원은 “3차 담화 이후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시점을 밝히도록 기다려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던 의원들도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주저하던 의원들이 촛불민심에 놀란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의원도 “대통령이 즉시 퇴임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흔들림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토론 과정에서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최종 결론을 내는 데는 모두 동의해 사실상 만장일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비박계 차기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비상시국위 소속 의원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물밑 설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직후부터 “여야 협상이 안 되면 탄핵 표결로 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날 회의에서도 그는 “박 대통령의 말을 기다릴 필요 없이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면 탄핵밖에 없다는 원칙을 지키면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시국위는 지난주까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렸던 박 대통령과의 면담과 관련해서도 “청와대로부터 요청이 온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며 ‘거부’로 결론 냈다. 이날 회의에서 비박계 수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 등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정적 견해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박계의 입장 변화는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그 책임을 다 뒤집어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ㆍ현직 새누리당 탈당의원 모임에 참석한 남경필 경기지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과의 약속은 어떤 내용이든 허망하다”며 “그 허망함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고 새누리당 비박계를 압박했다. 김용태 의원도 “퇴진 여부는 대통령 마음이지만, 대통령의 헌법질서 문란과 법치 훼손에도 국회가 탄핵 절차를 밟지 않는 건 헌법 위반”이라며 “탄핵절차 개시에 실패한다면 20대 국회는 국민에게 버림받고 해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비상시국위를 비롯해 새누리당은 지난주 당론으로 ‘내년 4월 말 퇴진ㆍ6월 말 대선’을 확정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영우 의원은 “민심이라는 명분을 떠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한 탓”이라며 “우리 꾀에 우리가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비박계의 갈지자 행보가 결국은 차기 대선에서 입지를 고려한 정치적 셈법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비박계 일부는 ‘보수의 집’인 당에 남아 친박계를 절멸시키는 쪽이 재집권에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미 수명을 다한 새누리당을 떠나 제4지대에서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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