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한 주’ 풍항계
“일해재단 모금 내라고 해서 내”
5공 청문회 때 정주영처럼
증인 총수들 폭탄 발언 나올 수도
朴대통령, 고해성사한다 해도
국민 마음 돌리기엔 늦은 듯
비박계 응집력 발휘할지 불투명
야권이 합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9일 표결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표결 참여로 전격 선회하면서 탄핵안 가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남은 5일 사이 박대통령이 퇴진 카드를 재차 던지는 등 탄핵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비박계 내부도 막판 변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얼마나 응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탄핵안 가결 가능성에 대해 “50 대 50”이라며 “승패를 알 수 없는 전쟁이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이 죽는 것이고, 부결되면 여의도(국회)가 죽지 않겠느냐”며 “제로섬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 말리는 일주일이 전개될 것이다”고 말했다.
野 국정조사 청문회로 기선 잡기
야권은 이번 주초 3일 간 예정돼 있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기관보고와 청문회를 통해 탄핵 정국의 기선을 잡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지난 달 20일 검찰이 중간 수사 발표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박 대통령을 적시한 이후 진상규명 작업은 다소 소강 상태였다. 야권은 이번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의 돈을 걷고 뒤를 봐주면서 ‘직거래’한 의혹과 세월호 참사 7시간 행적 등을 집중 조명하겠다는 계획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재벌 대기업 총수들과 국정농단 공범들 중 이른바 ‘제2의 정주영’이 나오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1988년 11월 ‘5공 비리 청문회’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일해재단 모금과 관련해 증인으로 불려 나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며 전두환 정권 차원의 강제 모금이었음을 폭로했다. 민주당 국조특위 관계자는 “결국 남은 ‘한방’은 증인들의 폭탄 발언 아니겠냐”며 “생중계 되는 국조 청문회로 선제공격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4차 담화로 탄핵 흔들기
탄핵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이 최후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사건 경위를 소상히 밝힐 기회를 갖겠다고 강조한 만큼, 별도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최후 변론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역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이후 표결을 앞두고 특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며 탄핵 자체에 반발해, 국회의 탄핵 시계를 앞당겼다. 당시 회견은 국회의원들의 반발을 초래했지만 이번 박 대통령의 4차 회견은 퇴진 의사를 재차 표명하는 방법으로 여당 의원들의 분열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선의만 재차 강조한다면 국민적 반발을 불러 역효과를 낼 소지도 다분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탄핵을 막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대국민 고해성사를 한들, 그 내용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올 지는 의문이다”며 “촛불 민심에 기름만 붓는 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은 ‘여야 협상’ 용납 불가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이날 여야 합의가 없으면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조건부 탄핵’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야 협상은 ‘탄핵 열차’의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야권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임기 단축 등 일체의 퇴진 협상은 없다고 못 박아왔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도 야권은 막판 협상 가능성에 대해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일축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고도 했다. 촛불민심이 탄핵 열차를 출발시킨 만큼, 야권으로선 협상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심에 역행하는 일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여야 합의를 전제로 탄핵 표결 동참을 말한 것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기 위한 면피용 출구전략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비박계 응집력은 미지수
비박계가 우여곡절 끝에 탄핵 대오를 갖추긴 했지만 얼마나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동안 비박계는 계속해 ‘조건’을 붙인 탄핵을 거론해 왔다. 물론 이번에는 전과 달리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입장을 밝혀도 여야 합의가 없으면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탄핵 열차에 탑승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퇴진 시점과 이후 권한 이양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즉각적으로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한다면 비박계의 상황은 다시 바뀔 수 있다. 탄핵을 추진할 명분이 없다는 ‘탄핵 회의론’이 득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에 가장 앞장섰다가 3차 담화 이후 탄핵 철회로 기우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였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는 이날 비상시국위 모임 이후 ‘비박계의 입장이 변경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의 수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열차 멈추는 것은 대통령 즉각 하야
박 대통령이 특정 시점에 하야 하겠다고 선언하더라도 탄핵 열차를 멈출 수 없다는 게 야권의 입장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즉각 하야를 선언할 경우, 탄핵 대상 자체가 사라져 탄핵 절차는 무의미해진다. 금태섭 민주당 대변인은 “법률적으로는 즉각 하야가 아니라면 무조건 탄핵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탄핵이 가결된 이후에 박 대통령이 즉각 하야를 선언해도 탄핵 절차는 중단될 수 있다. 금 대변인은 “일반 공무원의 경우 탄핵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사표를 낼 수 없지만,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은 예외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고 말했다. 이 경우 정치적 합의로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발의와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을 취소하거나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중지할 수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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