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1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 뉴스가 ‘전 미군 병사, 금발 미녀가 되다(Ex-GI Becomes Blonde Bombshell)’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트랜스젠더(MtoF)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크리스틴 요르겐슨(Christine Jorgensen)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유럽선 성전환 수술을 받은 예가 있었지만 미국선 알려진 바 첫 사례였다.
1926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내성적이었고, (남자애들이 즐기는) 거친 놀이를 싫어했다”고 한다. 45년 고교 졸업 후 징집 영장을 받아 입대했고, 제대 후 뉴욕 모호크대 등 몇몇 학교를 다녔다. 40년대 말 성전환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덴마크로 건너가 코펜하겐의 내분비전문의 크리스티안 함부거(Christian Hamburger)의 도움으로 호르몬 주사 처방을 받으며 덴마크 법무부의 성전환수술 승인을 받아냈다. 1951년 9월 코펜하겐 겐토프트(Gentofte) 병원에서 고환절제수술. 한 달 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몸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있다며 이렇게 썼다. “움츠린 채 미국을 떠나던 사람을 기억하니? 이제 그는 없어.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지금 내 영혼은 놀라워.” 그는 이듬해 11월 음경절제술을, 미국으로 건너와 질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의 사연은 이분법적 성(sex) 인식에 가해진 첫 충격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 세상 앞에 그는 당당히 나섰고,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겪어야 했던 곤란만큼 그는 유명해졌고, 커진 목소리로 성소수자 인권을 일삼아 이야기했다.
먼저 그는 덴마크 의사를 기려 이름(George William Jorgensen Jr.)을 크리스틴으로 개명했고, 방송 등 다양한 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자신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렸다. 연예인으로도 활동하면서 트랜스젠더의 용기와 자긍심을 북돋웠다. 그는 여러 차례 연애와 약혼을 했지만, 출생증명서의 성별을 바꾸는 데는 실패해 법적 결혼은 할 수 없었다. 그는 89년 방광암과 폐암으로 별세했다.
스스로의 자랑처럼, 그는 새로운 성혁명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국제 성소수자 인권기구 ‘Legacy Project’가 특별한 기여자들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조성한 ‘Legacy Walk’에 그의 청동명판도 자리를 잡았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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