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나와 보니 인근 식당 밥값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주려고 주먹밥을 준비했습니다.”
경기 가평군에서 자영업을 하는 우호창(46)씨는 26일 오전 7시부터 동네 주민들과 주먹밥 230인분을 만들었다.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중ㆍ고교생들에게 밥과 음료수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그는 “집회에 꼬박꼬박 나오는 학생들을 보면 멀리 유학 가 있는 자식 생각이 난다”며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고 한창 공부도 해야 할텐데 이런 일을 겪게 해 어른으로서 미안함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시민집회가 예상된 이날 광화문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오전 내내 눈이 흩뿌리는 궂은 날씨에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서로 음식과 따뜻한 음료를 나누며 집회가 시작 되기 전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정오 즈음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뒤편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82cook’ 회원들이 ‘하야커피’로 명명된 커피를 비롯해 모과차, 생강차 등 음료수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권모(39)씨는 “회원 한 분이 5,000인분을 제공하겠다고 나서 자원봉사단이 꾸려졌고 자발적인 모금으로 1만 잔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오천잔의 커피! 오천만의 함성으로!’라는 현수막을 무료로 제작한 이모(45ㆍ여)씨는 “그래픽 디자이너인 남편, 후배와 정성껏 준비했다”며 “진짜 선의가 뭔지 대통령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들의 나눔은 ‘깃발’로도 이어졌다. 문화 관련 종사자 10여명이 모여 만든 ‘최게바라 기획사’는 시민들이 저마다 바람을 담을 수 있게 깃발 1,000개를 준비했다. 캠핑테이블과 의자 등을 펼쳐 놓고 깃발을 자유롭게 꾸미도록 크레파스와 사인펜도 준비했다. 송지선(30ㆍ여)씨는 “집회에 자주 나오는데 천편일률적인 깃발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창작물을 만들어 보려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청소년들이 결성한 ‘청와대학교 총학생회’도 손깃발 200여개를 마련했다. 신민주(22ㆍ여)씨는 “시민들이 청와대로 행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라며 “주된 구호는 ‘등교하자 청와대로!’ 이지만 시민들이 각자의 생각을 손깃발에 써서 외칠 수 있도록 백지 상태로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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