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은 대화이며, 말걸기이고, 부름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은 대화이며, 말걸기이고, 부름이다

입력
2016.11.25 13:46
0 0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장-뤽 낭시 지음ㆍ이선희 옮김

길 발행ㆍ95쪽ㆍ1만원

장-뤽 낭시의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인간과 책의 오랜 관계를 명확하게 짚으면서 책과 서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장-뤽 낭시의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인간과 책의 오랜 관계를 명확하게 짚으면서 책과 서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모순된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 책은 더 이상 지식의 보고이자 사고의 요람으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종이 위에 프린트된 활자는 머지않아 사라질 거라고 미래학자들은 일찍이 말했다. 한 장의 디스플레이에 현대인들은 더욱 익숙하고, 게다가 두 눈을 굳이 책 위에 고정시키지 않아도 오감 만족 콘텐츠들은 제발로 찾아온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 책의 물성(物性)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 책 넘김의 사각거림, 종이의 면과 펜 촉이 맞닿을 때의 느낌을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애호한다. 그래서 전자책은 의외로 폭발력이 약했고, 검증된 책은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소비되며, 한때 자취를 감췄던 동네 서점까지 부활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가 장-뤽 낭시가 저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에서 논하는 책은 “책장에 정돈하거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오브제” 혹은 “종잇장 위에 인쇄된 상태의 텍스트”와는 다르다. ‘무위의 공동체’를 비롯해 수많은 저서가 번역돼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그는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의 각별한 친분으로도 유명하다.

장-뤽 낭시는 초월적이고 원형적인 의미의 책은 오로지 "책이 열리고 닫히는 지점"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장-뤽 낭시는 초월적이고 원형적인 의미의 책은 오로지 "책이 열리고 닫히는 지점"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책은 종종 한 쪽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에 비유된다. 지식과 정보를 내보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낭시에 따르면 책은 ‘대화’이고, ‘말걸기’ 혹은 ‘부름’이다. 그가 말하는 책의 이데아, 그러니까 초월적이고 원형적인 의미의 책은 오로지 “책이 열리고 닫히는 지점”에서만 탄생한다. 책성(冊性)은 “접히고 펼쳐지는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의 책을 해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독서’다.

책은 완결된 채 세상에 나와,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며, 그 어떤 것에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물건이 아니다. “독자에 따라서, 독자와 더불어, 독자와 반대해서, 독자가 모르는 사이에, 독자의 눈앞에서” 달라진다. 독자에게 내던져질 때 책이다. 그래서 책은 매번 긴장과 불안, 동요 속에서 탄생하는 셈이다.

“독서는 매번 책의 성격을 다시 특징짓는다. 독서는 어느 면에서 책을 다시 인쇄한다. 책을 다시 편집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독서는 매번 새로운 비용으로 새로운 관건으로 새로운 의미로 혹은 사라진 의미를 가지고 책을 다시 연결하고 다시 읽는다.”

책을 단순히 소통의 수단이나 소통을 표현하는 매체로 두지 않는 낭시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끝이 난 것이면서도 끝이 없는 것”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책은 사유의 전달이나 수용을 위한 중간 매체가 아니다. 책은 하나의 완전체로서 스스로 소통한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낭시의 책 예찬론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한 서점의 개점 20주년을 축하하며 쓴 글이 바탕이 됐다. 지금까지 발표한 철학서와 에세이에 비해 소재는 소박하나 궁극적이고 엄격한 그의 사유는 신변잡기 에세이로 책을 남기길 거부한다.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대로 인쇄술과 함께 시작된 인간과 책의 오랜 관계를 짚어내면서, 서점은 독자들에게 던져져 불타는 운석이 되길 희망하는 책이 처음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이라고 정의했다.

책이 이제껏 누려온 영광은 종이의 종말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랑시는 이 책 서문에서 16세기 철학자 몽테뉴의 글로 답을 대신한다. “책은 언제나 똑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