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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그리다’(2011)

입력
2016.1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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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북스는 사회 분야의 책을 주로 내고 앞으로도 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테지만 초기에 낸 책들은 결이 조금 달랐다. 퇴사한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출판사 설립신고를 한 건, 글 다루는 일이니 ‘얼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건 첫 책인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그리다’를 내놓고서야 깨달았다.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내자’고 결심하니, 쪼들리던 일터에서 탈출한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건 여행이나 예술 같은 선망하던 분야였다. 당시 놀며 쉬며 지리산 스케치 여행을 다닌다는 만화가를 소개받았고, 이야기해 보니 그 만화가나 우리나 지리산에 품은 의미가 남달랐다. 마침 걷기 여행과 둘레길 열풍이 불 때였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철학이 담긴 사색과 그림이라는 즉흥적인 기획에 저자가 흔쾌히 동의하면서 나름북스 첫 업무가 시작됐다.

완성된 원고를 이리저리 재고 골라 책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점 찍어 놓고 글을 쓰게 하다 보니 모든 것이 더뎠다. 편집자의 채근이 무색하게 저자는 수시로 지리산에 내려가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제일 짧은 지리산 둘레길 코스의 소요 시간이 두 시간이라는 말에 호기롭게 저자를 따라 나섰다가 5시간을 걷기도 했다. 과연 글로 본 지리산 둘레길과 걸어 본 그것은 달랐다. 앞서간 둘레꾼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며, 저자는 ‘댐이 어떻게 길을 파괴하는지’와 ‘케이블카가 왜 나무를 쓰러뜨리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그린 그림이 백여 컷에 달했다.

원고가 완성되니 더 큰 난관이 있었다. 교정을 마친 한글 파일과 스케치북에 수채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어떤 이들의 어떤 노고를 들여 책 꼴이 되는지 전혀 몰랐던 거다. 마음 좋은 디자이너에게 조판을 맡겨 두고 무작정 충무로 인쇄 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협업 방식, 고유한 사무와 용어 하나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다. 진땀을 흘리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간 과정은 어려운 게임의 튜토리얼에서 퀘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것마냥 즐거웠다.

인내심을 갖고 도와준 분들 덕에 출판사 설립 일 년 만인 2011년 5월 첫 책이 나왔다. 결국, 손익 계산에 실패했지만, 출판 일자무식들이 만든 것치곤 성공적이었고 저자도 만족했다. 지금 우리는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그리다’를 시행착오가 아닌 ‘수업’으로 생각한다. 이후 5년간 출판인으로서 서서히 중심을 잡으며,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를 주장하는 콘텐츠로 관심이 옮겨 갔지만, 초기에 낸 에세이들을 지금 다시 읽으면 사람이 배제된 세상 흐름에 대한 비판은 일관되지 않았나 싶다.

첫 책을 내며 만든 ‘느리게 가면 다르게 보입니다’라는 출판사 모토도 유효하다. 경쟁하지 않고 더불어 진전하고, 이윤이 아닌 사람의 노동과 삶을 소중히 하며, 또 그 생각과 가치를 전파할 방법의 하나가 책이라고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최인희 나름북스 에디터 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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