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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구름 한 자락이면 다 가린다

입력
2016.11.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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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광화문 하늘 위로 68년 만의 슈퍼문이 떠있다. 이날 올해 가장 큰 보름달이 떴지만, 궂은 날씨 탓에 관측은 쉽지 않았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광화문 하늘 위로 68년 만의 슈퍼문이 떠있다. 이날 올해 가장 큰 보름달이 떴지만, 궂은 날씨 탓에 관측은 쉽지 않았다. 연합뉴스

‘슈퍼’란 말은 내가 가장 일찍 알게 된 영어 접두사다. 첫 번째 단어는 ‘슈퍼마켓’.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동네에 슈퍼마켓이 생겼다. 나는 ‘슈퍼’와 ‘마켓’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것은 점원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슈퍼~’라는 어감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우리말의 ‘엄청난’ ‘대단한’과는 뭔가 다른 세련되면서도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에너지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슈퍼마켓이 생긴 후 나는 단골 가게를 배신했다. 슈퍼마켓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전에는 가게에 가면 뭐가 있는지 둘러볼 수도 없었다. 주인에게 어떤 상품을 달라고 하면 주인은 퉁명스럽게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슈퍼마켓에서는 내가 물건을 찾아서 점원에게 물건을 건네면 하얀 종이에 파란 글씨로 액수가 찍힌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친절한 말투의 존댓말로 가격을 말했다.

사실 슈퍼마켓은 불편한 곳이었다. 일단 가게보다 거리도 먼 데다가 내가 물건까지 찾아서 꺼내고 때로는 줄까지 서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엄마의 심부름을 가는 것이라 내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슈퍼마켓은 내게 슈퍼했다. 슈퍼마켓은 내게 세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귀한 감귤이 슈퍼마켓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하, 이제 감귤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감귤이라고 부르는 것도 귀찮은지 그냥 단음절로 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에 가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는지 엄마가 찌개에 넣을 두부가 필요하니 얼른 집 앞 가게에 다녀오라고 해도 나는 굳이 먼 거리를 달려서 슈퍼마켓에 갔다. 하루라도 슈퍼마켓에 들르지 않으면 발바닥에 바늘이 돋는 것처럼 말이다. 갈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만약에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지나지 않았다면 ‘보름달’ 카스텔라의 존재를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퍼마켓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가게에 슈퍼마켓이라는 간판이 붙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슈퍼라는 이미지도 희미해졌다.

내게 슈퍼가 다시 슈퍼하게 등장한 때는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1983년이었다. 전두환이라는 너무나 슈퍼한 독재자가 있어서 오금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살던 시절이다. 학교 교정의 윤동주 시비 구경이라도 하려면 사복경찰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 학교에 가야 했다. 학생들은 잔디밭에서 마음 편히 도시락을 까먹지도 못했다. 힘은 내게 중요한 것, 좋은 것이었는데 전두환이 그것을 바꾸어 놓았다. 전두환이라는 슈퍼맨은 강력한 힘을 나쁜 곳에 쓰는 악당이었다. 전두환을 보면서 힘을 나쁜 곳에 쓰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도덕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마침 영화 ‘슈퍼맨 3’가 개봉되었다. 대기업 총수가 얼간이 컴퓨터 기술자를 이용해 기상위성을 조작한다. 태풍과 홍수를 일으켜서 커피 경작지를 망치고 전 세계 커피 가격을 맘대로 조종하겠다는 음모다. 히어로 영화라면 이때 슈퍼맨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마땅하지만 대기업 총수는 슈퍼맨마저 악당으로 만들어버린다. 다행히 슈퍼맨에서 빠져나온 선한 분신이 악한 슈퍼맨과 대결을 벌인 끝에 슈퍼맨을 다시 착한 모습으로 되돌려서 문제를 해결한다. 슈퍼맨 3는 우리 마음속에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으며 어느 것을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우리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소방용수가 바닥나자 근처 호수의 물을 얼려서 거대한 얼음으로 만들어 가져오는 슈퍼맨에게 환호했을 뿐이다. 내게도 저런 힘이 있다면, 우리 대학생들에게 저런 힘이 있다면, 민중들에게 강력한 힘이 있다면 전두환 같은 독재자는 쉽게 처단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안은 채 영화관을 나와야 했다.

세상에 슈퍼 독재자는 있어도 정의로운 슈퍼맨은 없었다. 왠지 ‘슈퍼’라는 접두사는 나쁜 것에나 붙이는 것 같았다. 심리학 시간에 슈퍼에고(초자아)란 단어를 들은 다음에는 더 심해졌다. 괜히 슈퍼컴퓨터, 슈퍼헤비급, 슈퍼스타, 슈퍼탱커(초대형 유조선)도 덩달아 싫은 단어가 되었다.

68년 만이라고 한다. 지난 11월 14일 월요일에 뜬 달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문이라는 말은 낯설었는데 (아직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이제는 거의 매년 듣는 흔한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슈퍼문은 1948년 1월 26일 월요일 이후 무려 68년 만에 뜨는 가장 큰 슈퍼문이라고 한다. 이럴 거면 최근 몇 년 동안의 슈퍼문은 다른 이름으로 불렀어야 할 것 같은데, 매년 슈퍼문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뭐, 좋다. 그래 슈퍼문이라고 하자. 천문연구원은 14일 저녁 8시 21분에 가장 큰 달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4월 22일에 뜬 보름달보다 14%나 더 크게 보인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서 동쪽 하늘 고도 32도쯤에 떠 있는 달을 보고서 크다고 느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환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더 크다고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영화배우 김기천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달은 뜰 때와 질 때가 가장 크게 보인다.” 맞는 말이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을 찍으면 달만 나온다. 하지만 지평선 근처에 있는 달을 찍으면 사람과 나무 그리고 건물과 함께 나온다. 비교 대상이 있을 때야 비로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김기천은 이런 말도 했다. “달이 아무리 커도 옅은 구름 한 자락이면 하나도 안 보인다. 까불지 마라.”

슈퍼마켓, 슈퍼맨, 슈퍼문처럼 슈퍼 붙은 것들은 들어라. 청와대 구중궁궐 속의 슈퍼 권력도 마찬가지다. 구름 한 자락이면 다 가린다. 까불지 마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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