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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미친 짓이여”감 값 폭락에 울분만…

입력
2016.11.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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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찮은 어머니ㆍ휴가 낸 누나 오고

세 명 일당 줘 하루 종일 감 땄지만

똥값 된 시세에 팔수록 손해만

울분 못 이겨 소주만 벌컥벌컥

지난 태풍에 쓰러진 벼를 콤바인으로 수확하고 있다. 동네 형님이 일일이 손으로 해야할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안 되아요!” H동생은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벼를 수확하고 건조한 후에 바로 도정을 하면 싸래기가 많이 나와 큰일 난다며 협박했다. 일단 나락포대를 창고에 쌓아두었던 여느 해와 달리, 쌀을 빨리 보내야 한다는 급한 맘에 바로 정미소로 가려던 참이었다. 작업을 도와주던 친구가 말려도 말을 안 듣는다며 농사를 크게 하는 H에게 일러바쳤고, 그의 고함에 일사천리였던 계획은 틀어졌다. 그렇게 이틀간 트럭에서 잠을 재우던 나락을 깨울 차례다.

선잠 끝에 깬 새벽은 답답했다. 마당에 세운 트럭이 안 보일 만큼 안개가 내려 앉았다. 출발을 미뤄야 했다. 나락은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 방아를 찧으면 쌀이 쉽게 변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확인하면 이미 낭패다. 서경덕을 기다리는 황진이마냥 멍하니 앉아 창 밖만 바라봤다. 선풍기라도 틀어서 안개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졸다 깨다를 몇 차례, 안개가 꿈처럼 사라졌다.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능선이 나타난다. 출발이다.

농사 지으면서 나락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거지한테 밥 한 그릇은 기꺼이 내줘도 바닥에 떨어진 나락 한 톨은 손가락으로 찍어 담는 게 농부 마음이다. 나에게도 역시 처자식만큼 중한 나락이다. 처자식 먹여 살리는 하늘이시다. 아무 정미소에나 갈 수 없었다. 구례에서 제일 크고 시설도 깨끗한 도정공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정미소 마당은 이미 전쟁터였다. 트럭들이 곡예하듯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리며 드나들었다. 주인은 오후 4~5시께나 순서가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행이다. 바로 택배를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만사 작파하고 도정만 마치기로 생각한 날이니 상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누가 차창을 두드렸다. 옆 마을 형님이다. 창문을 열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닭튀김 먹으러 대기실로 오란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수다나 떨 겸 시켰나 보다. 배도 고프고 입도 심심해서 얼른 튀어갔다. 내년에 바꿀 나락 종자 얘기도 하고, 감 시세 얘기도 듣고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가 대통령 얘기가 나오고 사람들의 얼굴과 입은 거칠어졌다. 나라가 불행했다.

필자의 친구가 정미소에서 도정한 쌀을 트럭에 싣고 있다. 한꺼번에 물량이 몰리는 가을 수확기엔 나락포대를 실은 트럭을 정미소 마당에 세워 놓은 채 며칠씩 기다리기도 한다.

나도 불행했다. 기대했던 ‘다행’은 내 몫이 아니었다.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어 캄캄해졌고, 택배는 물 건너 갔다. “담 다음 차례요!” 주인이 와서 알려준 소식에 시동을 걸어보는데 차가 죽어 있었다. ‘닭 튀김’ 한 마디에 정신이 방전됐고, 창문 내리느라고 돌려 놓은 차 열쇠를 그대로 둔 채 몇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배터리도 방전됐다. 급하게 자동차 보험회사에 출동을 부탁해서 트럭을 살렸지만 순서는 늦어졌다.

그나마 트럭에 실리는 쌀 포대의 온기가 위안이 됐다. 집에 와서 창고에 포대를 쌓고 나니 9시가 넘었다. 뱃속에서 서러운 공룡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배가 쑥 들어가있다. 물론 내 배가 안으로 곡선을 이루며 들어가 있을 리는 없고, 평상시와 비교해서 높이가 낮아졌다는 얘기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창고 문을 닫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D동생의 이름이 떴다. “형님, 바쁘시대요.” 동생에게서 듣기 힘든 낮은 목소리였다. “왜, 무슨 일 있냐?” 물으니 그렇단다. 소주 한잔 하잔다. 바로 읍으로 나섰다.

택배 위해 아침 일찍 정미소행

닭튀김 먹다 차 방전으로 순서 늦어져

집 창고에 포대 쌓으니 밤 9시

술집 원형 탁자에 먼저 와서 앉아 있던 D의 얼굴엔 울분이 가득했다. 뭔 일이냐고 인사를 대신하니 날 보고 소리를 질렀다. “농사는 미친 짓이여!” 한참을 쳐다봤다. 혼잣말인지, 아니면 열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한 것인지도 의아했지만, 밑도 끝도 없는 말의 연유가 더 궁금했다. 물으니, 하루 종일 감을 땄단다. 누님과 자형도 휴가를 내고 왔고, 편찮으신 어머니도 합세했고, 아주머니 세 사람을 일당으로 불러 작업을 했단다. 그런데 감 값이 똥 값이란다. 박스 값, 공판장으로 보내는 운임, 경매 비용을 치니 손해란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내일도 그러할 걸 생각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그냥 들어줬다. 그런데 왜 반말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소주 4병으로 화를 누르고 일어섰다. 근거는 없지만 “좋아지겠지”라는 말을 업혀서 보냈다.

D동생이 늦은 밤까지 동네 작업장에서 단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날 서울로 싣고 갈 예정인데 시세가 좋지 않아 힘 빠진 모습이다.
간전댁 할머니께서 말씀도 없이 농장을 찾아와 들깨 타작을 하고 계신다. 오시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다. 당신 것도 아니면서 작년보다 알이 굵다고 좋아하신다.

다음날 오전 택배 보낼 고구마와 장류를 먼저 포장해 놓고 농장으로 나섰다. 전날 간전댁 할머니가 “들깨 털었냐”고 물으시기에 “아직요”라고 답한 것이 내내 찜찜했다. 혹시 말씀도 안 하시고 농장에 오시면 어쩌나 했는데, 요즘은 왜 의심이 다 사실이 되는지 모르겠다. 언제 오셨는지 덕석을 넓게 펴 놓고 깻더미를 두드리고 계셨다. “할머니……” 나는 신음처럼 말을 흘렸고, 할머니는 마주친 눈으로 씩 웃으셨다. 왜 전화도 안 하고 오셨냐고, 어떻게 오셨냐고 타박이라도 할 요량으로 다가가니 할머니가 선제 타격을 하신다. “앞집 요양사 아주머니가 태다 줬어요. 작년 보담 널찍허게 심으니 알이 굵고 좋구마요. 새덜이 파 묵지만 않았어두…… 이렇게만 하믄 내년엔 좋겠구마.”

언제 다 하나 했던 타작은 금방 마무리 작업으로 이어졌고, 할머니는 뭐 다른 일 할 거 없나 찾으시는 눈치였다. 택배 부치러 다시 가야 한다고 할머니를 설득해서 겨우 차로 모셔다 드렸다. 오는 길에 호두나무 심을 계획이 있다던 전 이장댁에 들렀다. “아버님 계세요~” 소리치며 뜰방에 올라서니 오봉댁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신다. 부부가 TV를 보며 쉬고 계셨나 보다.

누가 보면 바쁜 철에 쉴 틈이 있나 하겠지만, 철에 맞춰 해야 할 일 절대로 늦지 않는 분들이다. 편찮은 몸이지만 창고에는 콩이 타작 직전 상태로 대기 중이고, 양파 심을 밭 로터리 작업을 마치신 다음이다. 구입할 나무 품종과 수량을 여쭤보고 다음주에 사러 갈 때 사다 드리겠다며 일어서니 밥 먹고 가라고 하신다. “다섯 신데 벌써요?” 했지만 평소에도 그 시간이면 저녁을 잡수시는 지 알고 있다. 뭔가 척척 맞아 돌아가고, 바쁘지만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왜 맨날 나만 전투 중인지, 언제쯤 가을의 여유를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이 있다고, 점심을 늦게 먹었다고 말씀 드리며 방을 나섰다.

기별 없이 찾아와 들깨타작 해주고

철 맞춰 할 일 절대 늦지 않는 어르신들

언제쯤에나 가을의 여유 만들 수 있을지…

실제로 포장할 일이 산더미였다. 백미와 현미 반반을 주문한 경우는 다시 포장을 해야 하고, 장류는 용기에 뽁뽁이를 둘러서 담아야 한다. 택배 주소는 오전에 보내 놨고, 한창 느린 손을 재촉하는데 전화가 왔다. “**택밴데요, 오늘 물량이 많아서 마감이 빨라졌어요. 여섯 시 반까진 오셔야 돼요.” 낭패였다. 전화 온 시간이 6시. 그 시간까지는 포장을 다 마칠 수 없으니 몇 개는 내일로 미룬 채 일단 트럭에 싣고 달렸다.

택배사무소에 도착하니 또 다른 전쟁터였다. 지게차는 연신 마당을 휘젓고 다녔고, 사무실 안은 고성이 난무했다. “아 왔는디 못 보낸다믄 워쩌란 말이래!” 소리를 질렀고 “어머님, 오늘은 도저히 안돼요. 한꺼번에 몰려서 저희두 어쩔수 없구만요!” 또 소리를 질렀다. 지척인 두 사람이 노고단과 삼도봉에서 대화하듯 했다. 다행히 주소를 일찍 보내 놓은 덕에 내 물건은 턱걸이를 했다.

“못 보낸다믄 어쩌란 말이래”

택배사무소는 또 다른 전쟁터

고성 난무 속 턱걸이로 물건 부쳐

전표를 끊어 주던 사모님이 바쁜 중에도 아는 체를 했다. “원 사장님, 인터넷 무슨 기사에서 봤어요. 귀농하신 거였어요?” 질문의 의도가 모호해서 대답 대신 물었다. “내가 여기 사람인 줄 아셨죠?” 했더니 “네에!”하며 웃는다. 질문자의 의도와 자기 생각이 딱 맞았다고 확신할 때나 나올 수 있는 톤과 강도의 대답이다. 왠지 씁쓸하다.

올 가을엔 고구마 수확이 늦어져 밤에도 작업을 해야 한다. 아무리 땅 속에 있어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누웠다. TV에서는 연신 대통령 얘기와 함께 바람 넣은 얼굴의 여자가 나왔다. 대강 주요 뉴스를 보고 채널을 돌리니 징검다리 식으로 ‘먹방’이 나왔다. 아보카도가 어쩌고, 레몬즙이 어쩌고 하며 요리를 했다. 그 옛날 어린 장금이도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어쩌라구!” 했건만, “음식에 설탕 대신 감을 넣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하는 요리사는 안 보인다.

해 놓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에 들어간 지 1초 만에 전쟁 영화에서 죽기 직전의 병사 표정으로 자지러졌다. 누구는 먹방을 ‘푸드 포르노’라고 했단다. 실제로 제가 먹으며 즐겨야 좋은 일을 남들이 먹는 것을 보고 만족하는 방식이라 그렇단다. 몰라서 하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포르노는 비슷하게 즐길 수 있는 대체 방법이라도 있다. 하지만 먹방은 그저 보고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방송에 나오는 맛집은 대부분 서울에 있고, 일 년에 두어 번 갔다가 쫓기듯 내려오면서 경험하기는 힘든 일이다. 채널을 돌렸다.

TV에선 또 대통령 얘기

“잘못허고 나서 사과허는 놈들은

한 번 더 두들겨 패야 해

미안하다믄 끝인가?”

연예인들 얘기였다. 무슨 남자들 순위를 매기는데 1, 2, 3위가 나왔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아내에게 그들 이름을 대며 물었다. “내가 유해진보단 낫지?” 아내는 계속 게임을 하며 답했다. “응.” 혹시나 했지만 또 물었다. “내가 김종국보다 낫지?” “응. 김종국은 내 취향 아냐.” 자신이 붙어 다시 물었다. “내가 이서진만 못해?” 아내는 게임을 멈췄다. “많이. 코가 마이 차이 나” 다시 물었다. “내 코가 낮은 편인가?” 아내는 친절하게 답했다. “낮은 편이 아니고 낮아.” 나는 발끈했다. “이게 뭐가 낮아! 안경 안 흘러내리고 비 안 들어가면 됐지.”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이게 낮은 게 아니면, 그럼 구멍만 뚫려 있어야 낮은 거야?” 아내는 총평으로 마감했다. “매사에 너무 낙관적인 게 탈이야. 현실을 받아 들여. 인정할 건 인정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인정한다. 그런데 낙관적이지도 않으면 농사 짓기 너무 힘들거든.’

다시 채널을 돌렸다. 또 대통령이다. 두 번째 사과를 했단다. 언젠가 장씨 아저씨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잘못허고 나서 사과허는 놈들은 한 번 더 두들겨 패야 해. 미안하다믄 끝인가? 계속 사과만 허믄 되게? 잘못했다고 헐 일을 왜 헌겨. 잘못인 지 알믄서. 애초에 허들 말았어야제.”

맞는 말씀이다. 두들겨 패 주고 싶은데, 다 모인다니 서울 가고 싶은데, 농장에서 얼기 직전의 고구마를 캐고 앉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든 게 잘 되겠지 바란다. 지금까지는 틀렸지만, 이번의 ‘잘 될까’ 하는 낙관적인 의심은 현실이면 좋겠다. 부디.

전 한국일보 기자 camaragaga@naver.com

콤바인이 논을 누비며 벼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탈곡하고 난 볏짚은 썰어서 논에 다시 뿌린다. 볏짚을 축사에 팔아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제 땅에서 난 풀을 다시 뿌려주면 훌륭한 거름 역할을 한다.
D동생이 늦은 밤까지 동네 작업장에서 단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날 서울로 싣고 갈 예정인데 시세가 좋지 않아 힘 빠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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