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이 살았지만 늙고 가난한, 할배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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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살았지만 늙고 가난한, 할배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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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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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자 범주다. 대화보다 훈계, 타협보다 명령이 가부장의 권위라고 여겼던, 권력 잃은 노인들은 자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할배의 탄생

최현숙 지음

이매진 발행ㆍ264쪽ㆍ1만3,500원

평화학자 정희진은 10여년 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자 범주”라고 말했다. 지식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노인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들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가 서민에게만 붙이는 ‘노인’이란 칭호는, 나이 듦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는 한국사회 연령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도 했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이른바 ‘생애주기’식의 연령주의와 나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는 연소자/연장자 우선주의다. 어떤 사람에게 나이 듦은 권력에 접근하는 유용한 방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노동과 성과 사랑, 욕망의 주체는 가부장제 한국사회에서 젊은 남성에 한정된다. 고로 이 표준적 인간 범주에서 제외된 노인은 복지의 대상일 뿐이다.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은 이런 한국의 연령주의가 개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관찰한 구술사 연구다. 고독사, 어르신, 박카스 할머니, 나라 팔아먹어도 1번을 찍는 콘크리트 보수, 그리하여 나라꼴을 이 모양으로 만든 원흉. 노인의 삶은 지금 여기의 모든 사람에게 공포다.

저자가 만난 ‘할배’는 둘이다. 전북 부안 출신의 김용술(71)은 ‘일본 종놈’ 만들지 않겠다고 학교 안 보낸 아버지 탓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한다. 양복점 테일러, 섹스 비디오방 주인, 채소장사 등을 하면서 돈과 여자가 생길 때마다 신나게 놀러 다녔고, 이혼 뒤 구두 수선을 하며 속궁합 잘 맞는 여자와 만난다.

강원 횡성 출신의 이영식(70ㆍ가명)은 유년시절을 큰집 더부살이로 보냈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 다방 주방에서 일한다. 남자다워지려고 안 가도 되는 군대에 가지만 작은 키 때문에 무시 받자 월남전에 지원하고, 돌아와 노숙생활을 한다. 목수로 생계를 꾸리지만 가정은 꾸리기가 두려워 평생 홀로 산다.

두 사람의 삶은 군대, 여자, 돈으로 점철된다. 김용순은 군대는 남자라면 가볼만한 재미있는 곳인데, 인권이나 들먹이는 한편에서 자살이 끊이지 않는 거고, 꾀 못 내고 요령 피울 줄 모르고 탈영한 놈들은 병신이라고 말한다. 이영식도 요즘 애들이 너무 약해 군대에서 사고가 많다고, 때리는 놈은 통솔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폭력을 두둔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군대 안 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다. 김씨는 “대한민국은 유병언이 같은 사이비 교주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그런 구조”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고, 이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먹고 살게” 했다며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둘 다 화려한 성매매 경험을 자랑하고, 평생 쉬지 않고 일했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통점도 있다. 김용술은 한 번 만난 여자도 많지만 동거도 여러 번 했다. 여자 때문에 밥벌이와 사는 곳을 자주 바꿨다. 저자는 “성생활과 관계, 직업 변경과 주거 이주 사이의 상관성이 높은 건 가난한 사람들의 성생활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돈 많은 남자들은 정상적인 가족과 직장, 주거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결혼 바깥에서 성을 즐긴다. 이영식은 전국을 돌아다녔고 관계하는 여자도 함께 바뀌었다. 이성애 결혼관계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남성 주도로 남녀가 가족을 책임지는 방식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정상의 성 규범’에 따르면, 두 할배는 늙고, 가난하고, 결혼을 안 하거나 깨져서 정상에서 밀려났다.

이들의 구술을 통해 저자는 왜 가난한 노년 남성이 불평등을 받아들이는지, 국가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비정상, 소수자의 문제는 이미 항상, 언제나 정치의 문제이므로. 대화보다 훈계, 타협보다 명령이 가부장의 권위라고 여겼던 늙은 수컷들은 자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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