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상실해 국회를 중심으로 한 여야 정치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1일에도 거국중립내각 문제를 놓고 하루 종일 소모적 정쟁만 일삼았다. 머리를 맞대고 정국 수습의 가닥을 잡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정국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간 지금 박 대통령에게 분출하고 있는 국민의 분노가 언제 여야 정치권으로 옮겨갈지 모를 일이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정국 수습을 위한 유력한 방안이라는 데는 여야가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거국중립내각을 뒷받침하는 헌법상의 분명한 규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여야 정치권이 협의를 통해 구체적 방향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민의당 등 3당은 만나서 의견차이를 좁혀갈 생각은 전혀 안하고 서로 전제 조건을 앞세워 주도권 싸움만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엊그제 제시한 거국 중립내각 방안을‘국면 모면용 잔꾀’라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인 문재인 전 대표는 “시간을 벌어 짝퉁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이냐”고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가장 먼저 제안한 사람은 문 전 대표 자신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 새누리당은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박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권을 민주당에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문 전 대표가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당리당략에 따라 춤추는 정치권의 어지러운 주장에 국민은 혼란스럽다.
물론 야권이 먼저 제안했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을 건의하고 총리후보로 특정 인물들까지 거론한 것은 잘못이다. 대통령의 당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책임 총리에게 권한 위임은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야 간 견해차가 현격한 상황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태로는 여야 간 신뢰와 긴밀한 협의를 전제로 하는 거국중립내각은 성립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권위와 신뢰를 상실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헌법상 지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결국 헌법 테두리 내에서 여야가 협의를 통해 현실적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야당은 국정농단의 진상규명이 먼저라고 하지만 시급한 국정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국정표류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이유불문하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게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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