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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검열, 세월호 규명ㆍ대통령 풍자에 민감”

입력
2016.10.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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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교수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문화 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이동연 교수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문화 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문화ㆍ예술계가 들끓고 있다. 한국일보가 9,473명의 문화 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난 12일 보도한 것이 그 계기다. 이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이들에게 공연장 대관이나 각종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융성을 강조해 온 현 정부가 시대착오적 검열과 통제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해 왔음이 확인된 것이다. 문화 예술인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 개최 ▦문화예술위원장 사퇴 ▦블랙리스트 작성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집단행동을 계속할 것을 결의했다. 이런 문화 예술인들의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는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ㆍ51)을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문화 예술인들이 겪은 정부의 검열과 통제의 실태 등을 들어봤다.

- 문화 예술계가 현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특정 문화 예술인이 정부지원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현상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나 집권 초까지 ‘문화융성’을 강조해왔고, 각종 문화정책 수립단계에서 소위 진보적 문화계 인사들에게도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 이전 정권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집권 첫해인 2013년 11월 제8회 런던한국영화제를 준비하면서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당초 개막작으로 선정된 ‘설국열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바꼭질’로 바뀌었는데, 영화관계자의 전언으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에 계급투쟁을 상징적으로 다룬 ‘설국열차’가 적절치 않다며 영화제 주최 측이 일종의 자기 검열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해 12월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관객 1,000만을 돌파하며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자 문화 예술계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정권 수뇌부는 이 영화로 인해 노무현 향수가 일어나 제2의 ‘촛불 시위’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여 긴급회의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당시 ‘보수적 가치‘를 선전할 수 있는 1,000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대책회의도 했다고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세월호 관련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문화 예술인들의 성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표적인 통제 사례로 2015년 10월 한국공연예술센터 주최 팝 업시어터 행사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연극 ‘이 아이’ 공연 방해 사건을 들 수 있다. 프랑스 희곡이 원작인 이 연극은 10가지 다양한 가족사를 통해 가족의 본질을 다루는 연극이었는데, 엉뚱하게 이 연극이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주최 측에서 진행 중인 공연을 방해하고 나중에 대본 제출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부산시장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영화제가 전방위 감사를 받고 결국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문화 예술에 대한 검열이 노골화됐다.”

- 세월호와 야당 정치인 지지 선언 외에 다른 검열 기준도 있나.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된 풍자나 비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10월 국립국악원에서 ‘금요공감’ 프로그램으로 국악 연주 팀인 ‘앙상블 시나위’가 박근형 연출가와 함께 김소월의 시를 국악, 연극과 접목한 음악극 ‘소월산천’을 공연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공연 2주 전에 국립국악원 측이 박근형 연출가의 공연을 빼고 앙상블 시나위 단독 공연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표면적 이유는 소극장이 연극을 하기엔 조명도 없고 극적 효과를 살리기에 부족한 공간이어서 연극은 빼라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그 공연장은 국악과 연극, 무용, 클래식을 접목한 융합 공연을 계속 열어왔던 곳이었다. 또 원래 금요공감 프로그램이 국악과 다른 장르를 접목한 공연이 주요 의도였으니, 연극은 빼고 국악만 공연하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2013년 박근형 연출가가 기획한 연극 ‘개구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시하는 인물이 국정원 댓글 공작을 두둔한 대사를 한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2015년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사업에 그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선정되었지만, 나중에 위원회 관계자가 지원포기를 종용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국립국악원이 혹시 이 공연을 그대로 했다가 혹시 문제되지 않을까 우려해 빼라고 했던 것 같다. 문화연대가 박근혜 정부 들어 예술검열의 논란에 선 사례들을 조사한 결과 2013년 9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24건이나 됐다.”

- 여당은 “명단에 포함된 예술인 중 116명에게 총 195건의 예산지원이 이뤄졌다”며 “블랙리스트는 정부 흠집 내기용 낭설이며 지원 선정에서 탈락한 사람이 근거도 없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명단에 있는 사람 중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문예위 회의록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도종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회의록에 의하면 권영빈 전 문예위 위원장이 예술인 지원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여러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 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라는 언급이 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결국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애기로 해서 심사에 빠졌습니다”라고 했다. 국회감사장에 제출된 녹취록은 물론 상당 부분 삭제된 채로 제출됐지만, 이 회의록 내용만으로도 블랙리스트의 존재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이 명백하다. 문예위 지원작 심사과정에서 최종 필터링의 기준은 한국일보가 보도한 것처럼 ▦2012년 대선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2014년 지방선거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 선언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 명단이 기준이 됐을 것이다. 이 명단을 기본으로 정부가 대상자를 덧붙이거나 빼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공개된 명단에 들어 있어도 지원을 받거나, 빠져 있어도 배제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사업 희곡분야에 지원해서 1위로 선정된 이윤택 연출가의 ‘꽃을 바치는 시간’이 최종적으로 지원작에서 배제되는 등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문화예술계가 정부 지원으로부터 독립해 활동할 수 있다면 정부 통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또 지원해 주면 좋지만 안 준다고 시비를 걸 순 없지 않으냐는 반응도 있다.

“예술가들이 정부에게 지원을 안 받고 예술을 하면 되지 않느냐, 또 현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예술가들이라면 지원금 안 받는 게 옳지 않으냐는 일각의 논쟁이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가가 자신을 포함한 온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예위나 정부 관련 문화 예술 단체의 지원에서 창작능력 이외의 잣대 때문에 배제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또 심사가 공정하다면 탈락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지원작 선정이 너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대부분의 예술 분야가 존립하기 힘든 상황인가.

“상업적 뮤지컬이나 대작 흥행 영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티켓 판매만으로는 생존하기 불가능하다. 영화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부분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국악 공연 같은 경우 유료관객 비율이 평균 20%가 안 된다. 클래식 공연도 절반이 채 안 된다. 뮤지컬을 제외한 순수 연극 같은 경우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티켓 판매로 충당해야 하는데 유료관객이 절반이 채 안 되니 빚을 지거나 정부 지원으로 충당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생각하면 지원이 필수적이며,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의식한다면 창작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은데.

“자기 검열이 가장 무섭다. 창작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적당한 표현을 찾기 전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식의 자기검열을 하게 되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비판적인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쉽지 않게 된다. 전반적으로 창작의 비판정신이나 참여의식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 나온다. 우선 작품의 주제를 정할 때 정치나 사회 비판적 소재를 택하기 어려워진다. 사회적 재난이나 정치적 스캔들과 관련해 풍자 또는 비판하는 작품에 대한 창작 의지가 줄어든 것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연극계에선 정부의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서 6월부터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라는 연극제를 하고 있다.”

- 순수 예술은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그 때문에 크든 작든 정부의 간섭을 피하기 어렵다. 근본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지원을 받으면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뭐가 있을까.

“정부의 철학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도 간섭하고 검열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도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는 원칙이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그 검열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문화정책이 과거로 퇴행했다. 문예위도 진정한 민간자율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문예위의 설립목적 자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위원장 선임이나 지원 작품 선정은 예술인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과감히 조절과 통제의 끈을 끊어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응하는 예술행동은 앞으로 진상규명 국회청문회 요청, 문화예술위원장 사퇴 1인 시위, 예술인포럼, 검열반대 페스티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이동연 교수는

-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박사

- 전 한국예술연구소 소장

- 전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 전 게임문화재단 이사

- 현 계간 ‘문화/과학’ 편집인

- 현 한국음악사학회 이사

- 현 서울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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