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폐기됐다던 경찰, 은폐 의혹 확산
“서울청서 생산한 문서 모두 폐기
다른 기관 보유한 것 간과” 해명
확인도 않고 부인 일관 신뢰 타격
2. 野 “이철성 청장 위증… 사퇴해야”
유족, 5차 부검협의 제안도 거부
‘시민지킴이단’ 참가자 크게 늘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서 백남기투쟁본부가 개최한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부검영장 집행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4일 고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질 당시 경찰이 작성한 상황보고서(상황속보)가 전국 54개 경찰 기관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속보의 존재가 처음 공개된 데 이어 다수 기관에서 보관 중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야권은 이철성 경찰청장 사퇴를 촉구하는 등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19일 경찰청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경찰이 줄곧 폐기를 주장했던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상황속보는 전국 경찰기관 54곳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경찰청은 전날 언론보도로 상황속보 전문이 공개되자 뒤늦게 전국 지방경찰청을 통해 보유 여부를 파악한 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상황속보는 사건 당일 오전 10시30분부터 30분 단위로 집회 현장 상황을 담았으며 27보까지 작성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황속보 담당 부서인 서울경찰청 정보라인에서 생산한 문서는 모두 폐기했지만 속보를 전달 받은 다른 기관의 보유 유무를 간과했던 것”이라며 “숨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작성한 ‘상황속보 25보’.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치료중이라고 적혀있다. 민중의 소리 캡쳐

경찰은 다시 한 번 신뢰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백씨 사인을 증명할 수 있는 내부 정보를 공유한 경찰 기관이 수십곳에 달하는데도 일체의 확인 과정 없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부검 실시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청장의 위증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야권은 이날 이 청장 사퇴를 공식 요구하며 공세를 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청장은 상황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가 하다가 이후 폐기했다고 입장을 번복했고, 법원에 제출된 경찰 답변서 일부를 공개하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며 “더 나아가 해당 문건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된 만큼 위증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은폐 의혹이 커지면서 인권ㆍ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백씨 부검반대 주장은 더욱 힘을 받는 분위기다. 상황속보에서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며 부상을 유발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데다, 이날 검찰이 백씨를 다치게 한 가해자로 지목한 ‘빨간우의’ 남성 A씨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찰이 조사에서 유독 백씨에게 접근하고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는 장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애초부터 경찰이 빨간우의를 배제한 채 백씨가 의식불명에 빠진 원인을 물대포로 보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 소속 전문가들은 이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명백한 경찰폭력과 과잉진압에 대한 증거가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증거법칙을 위배했다”며 부검 반대 목소리를 냈다. 유족 측은 경찰이 이날까지 제시한 5차 부검협의 제안을 재차 거부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지난 16일 꾸린 ‘백남기 시민지킴이단’ 참가자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상황속보 소식이 알려지자 30~40명이 머물던 빈소 주변에는 시민 60여명이 모여 부검의 부당성을 알리는 여론전을 지속하고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소설가 공지영씨, 변영주 영화감독 등 유명인사들도 시민지킴이단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