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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아기 밥상

입력
2016.10.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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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했을 때 나는 몹시도 난감했다. 아침식사 때문이었다. 계약서대로라면 분명 홈스테이 주인집에서 내 아침식사를 챙겨주어야 하는 건데 아무리 주방을 기웃거려도 그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항의하는 나에게 홈스테이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리얼을 사다 두었고 냉장고 안에는 우유가 있어. 넌 시리얼 봉투를 열어서 그릇에 담아 우유를 부어 먹기만 하면 돼. 우리 집 다섯 살짜리 아이도 그 정도는 할 줄 알아.” 실제로 그 집의 다섯 살 아이는 시리얼에 우유를 잘도 부어 먹었다. 이제 돌을 갓 지난 내 아기는 이유식을 먹는 중이다. 하루는 소고기, 하루는 닭고기, 거기다 갖은 채소를 넣어 찌고 갈고, 보통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언제쯤 나처럼 된장국에 밥 한 그릇 말아 오이지 한 점 올려 후딱후딱 먹어 치울 수 있으려나. 아이를 키우는 후배에게 하소연을 했다. “도대체 몇 살이 되어야 혼자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런 날이 정말 오기는 하는 거야?” 후배가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시리얼이랑 우유 주면 돼요. 엄마 마음이 불편해서 못 주는 거지. 나쁜 엄마 될까봐. 조금만 기다려봐요. 나는 달걀이랑 김만으로 애들 다 키웠어. 가끔 햄 한 번씩 구워주고.” 나도 하루 빨리 달걀과 김만으로 아기 밥상을 차려줄 날이 왔으면 싶다. 호주의 그 예쁜 이층집에 살던 다섯 살 꼬마 아이처럼, 아침이면 눈을 부비며 시리얼 통을 들어 그릇에다 와르르 붓던 그 아이처럼 얼른 자라주었으면. 그렇게 절로 자라주었으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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