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실세와 가까운 친박
“국감서 낙하산 논란 피하려
무리하게 서둘러” 지적 나와
금융기관장 낙하산 신호탄 우려
“신입사원 뽑을 때도 한 달 가까이 걸리는데 자본시장을 이끌어 갈 차기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고작 5일 검증하고 확정하는 게 말이 됩니까.”
정찬우 금융위원회 전 부위원장이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최종 후보로 결정되면서 금융권 안팎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정 전 부위원장이 현 정부 실세들과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인사라고 해도, 한국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차기 이사장 공모 후 영업일 기준 11일 만에 속전속결로 최종 후보를 낙점한 건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달 27일 예정된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낙하산 논란이 제기되는 걸 피하기 위해 거래소가 무리하게 공모 절차를 몰아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거래소를 시작으로 줄줄이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기관장 자리를 낙하산 인사가 꿰차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이날 정 전 부위원장을 차기 이사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기로 했다.
정 전 부위원장은 금융연구원에 오랜 기간 몸을 담았고,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금융분과 자문위원, 외교통상부 한미FTA 금융부문 자문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 등을 지낸 만큼 전문성 면에서는 흠잡을 부분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후보자 추천과 선임절차가 특정 후보자를 위해 짜여졌다는 인상을 줄 만큼 급박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이달 30일 임기가 끝나 물러나는 최경수 이사장의 후임을 뽑기 위해 지난 2일 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리고 5일부터 공모를 시작했다. 공모 마감인 12일까지 공모에 응모한 인사는 정 전 부위원장을 포함해 총 6명이었다. 위원회는 13일부터 이날까지 후보자 6명을 상대로 서류심사와 면접을 진행했다. 추석 연휴를 빼면 사실상 후보 검증에 걸린 기간은 단 5일에 불과하다. 거래소는 이달 30일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장 선임을 최종 확정한다. 위원회가 꾸려진 뒤 영업일 기준 18일 만에 이사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인데, 과거 위원회 가동 이후 최종 선임까지 3개월 정도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다.
주총 역시 형식적 절차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증권사 사장 36명 중 절반 가까운 14명이 오는 27일부터 미국으로 단기 연수에 떠나면서 표결권을 거래소에 위임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낸 논평에서 “이번 선임절차가 누군가를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진행된 만큼 처음부터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은 이번 거래소 신임 이사장 선임을 본격적인 낙하산 인사의 신호탄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달 말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내년 초까지 8자리 안팎의 금융기관장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금융권 고위 인사는 “임기 말로 갈수록 청와대의 제 사람 챙기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거래소 이사장 인사 과정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