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도] 졸혼(卒婚)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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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졸혼(卒婚)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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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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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100세 시대. 결혼에도 계약만료 기간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현명한 여성들은 오늘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 땅의 서식지로서의 불모성, 미래의 발전가능성 부재, 여성의 사회·문화적 생존권 침해 등을 두루 감안해 개체번식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이 유전자의 명령이다. 나처럼 몽매한 여성이나 아이가 안겨주는 즉자적 즐거움에 현혹돼 이 지엄한 명령을 거스르며 둘씩이나 낳는다. 이러한 여성들을 세계는 긍휼히 여겨주기 바란다.

보다 현명한 여성들은 오늘날 결혼하지 않는다. 여성혐오가 거대한 문화적 전통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이 땅에서 결혼은 사랑이라는 낭만적 관계의 영구지속이 될 수 없다. 여성의 고학력화 및 사회진출은 해방이 아닌 이중착취의 기제가 된 지 오래. ‘맞벌이’가 결혼 조건 1위인데,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OECD 최하위다. 퇴근한 아내가 3시간 14분을 집안에서 동동거릴 때 남편은 40분 일하면서 맞벌이가 필수.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고, 시댁 대소사엔 며느리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데, 맞벌이가 또 필수. 세계는 이러한 여성들을 긍휼히 여겨주기 바란다.

맞벌이(생계형이든 자아 성취형이든)의 이중착취에 포획된 여성들에게 정녕 출구는 없는 듯하다. 배우자가 바뀌고, 가족문화가 바뀌고, 노동현실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면 될 일이지만, 이 중 하나라도 죽기 전에 변화를 목도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내 힘으로 사람 하나 바꿀 수가 없는데, 무슨 수로 세계를 바꾸나. 싱크홀이란 진입하지 않거나 탈출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곳이다.

‘새끼 때문에 산다’(stay together for kids)는 슬프지만 결혼의 진리다. 상호 이해와 애정만으로 결혼이라는 장기계약 관계를 지속하는 영웅적 남녀도 있기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결혼이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대체로 착취 제도다. 사랑과 희생으로 미화된 이 제도 속에서 가해자는 폭력과 도박과 외도라는 혼인파탄 3대 요인이 없는 한 가시화되지 않는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 ‘선녀와 나무꾼’을 읽어주던 어느 밤,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두 아이를 안고 훨훨 날아오르는 대목에서 나는 왜 혼자 목이 메었던가. ‘이 전래동화가 이렇게 심오한 메타포였다니…’ 놀라던 내게 ‘너는 선녀가 아니다!’ 외치는 자, 유죄. 그렇다. 나는 날개옷이 없고, 새끼는 이토록 아름다워서 어미의 탈주를 막는다.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는 황혼이혼은 우리 시대의 선녀들을 위한 날개옷이다. 법원행정처가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2년 이래 결혼생활 20년 이상 된 황혼이혼은 전체 이혼 부부 10쌍 중 3쌍으로 비중이 가장 높다. 결혼생활 5년 안에 헤어지는 신혼이혼을 처음 앞선 2012년 이후 무섭게 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혼요구의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혼인파탄의 근저에는 철저히 가부장제에 기반한 제도 자체의 모순과 결함이 놓여있다. 드라마틱하게 기대수명이 높아진 100세 시대는 70년간의 결혼생활(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을 가능케 했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됐는데도 끊임없이 자동 연장되는 결혼은 자발적 계약 종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이 정도 살았으면 됐지 않수?’

남편과 친정과 친구들에게 당당히 공표해왔으나 비웃음만 샀던 나의 혼인종료 계획이 졸혼(卒婚)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열도에서 건너왔을 때, 분하면서도 기뻤다. 졸혼은 100세 시대를 맞는 결혼제도의 미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퇴직하듯, 결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종료한다. 황혼이혼과 달리 법적 혼인관계는 정리하지 않고, 쌍방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삶을 산다. 생의 동지로서의 우정에 기반해 한 달에 한 번은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며 데이트도 한다. 둘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14년. 좀 길기는 하지만, 결혼이 출구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는 졸혼을 떠올리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방학숙제들을 봐주기 위해 개학맞이 긴급휴가를 냈던 우울한 심사가 갑자기 밝아지는 것이 흥겨운 노래까지 흘러나올 기세다. ‘졸혼을 할 거야, 졸혼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게 나만을 위하여~.’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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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위기'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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