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고공비행을 기대했던 드라마가 불시착 위기에 처했다. ‘제2의 태양의 후예’라는 수식어도 사라진 지 오래다. KBS2 수목극 ‘함부로 애틋하게’(‘함틋’)는 KBS의 희망에서 고민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 사전제작 드라마인데도 완성도를 담보해내지 못했다. 한류스타 김우빈과 배수지의 조합만으로 경쟁 방송사들의 시기 어린 질투를 받았던 ‘함틋’은 결국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방증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부터 구태의연하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사생아이자 톱스타 신준영(김우빈)과 그의 이복형제이자 대기업 본부장 최지태(임주환),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은 다큐멘터리PD 노을(배수지)은 ‘태양의 후예’(‘태후’)를 잇기엔 진부해도 너무 진부한 캐릭터다. 여기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주인공, 억척스럽게 살아가며 웃음을 잃지 않는 여자주인공, 복잡한 사각관계를 더 얽히게 만드는 악녀의 등장 등은 흡사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이 죽일 놈의 사랑’ ‘고맙습니다’ 등 웰메이드 드라마를 선보였던 이경희 작가의 신작이 맞나 싶을 정도다.
시청률도 고전하고 있다. 12%로 시작한 시청률이 7%까지 떨어진 뒤 3주 동안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함틋’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를 짚어봤다.
◆‘함부로 애틋하게’ 시청률
※시청률조사기관 TNMS 집계.
라제기 기자(라)=“드라마 초반부터 전개가 황당해 놀랐다. 사생아인 남자주인공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같은 설정이 너무 도식적이다. 여자주인공은 캔디형이고, 남자는 백마 탄 왕자다. 특히 신준영은 ‘쌈짱’에 ‘공부짱’ ‘얼짱’이다. 첫 회에 검사 출신 정치인 최현준(유오성)이 등장하는 순간 신준영의 아버지라는 걸 바로 눈치 챘다. 너무 뻔하다. 198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양승준 기자(양)=“이야기 틀이 낡았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신준영이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연인인 노을에게서 증거자료를 빼앗는 등 인물들 간의 설명이 너무 단순하다. 또 폭염이 이어지는 현실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코트나 점퍼, 목도리 등을 착용한 상황도 거슬린다.”
조아름 기자(조)=“오글거리는 대사도 거슬린다. 오랜 만에 재회한 뒤 서로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다가 신준영이 ‘너 나 몰라?’하자, 노을이가 ‘알죠. 신준영씨야 우리집 꼬마들도 다 안다’ 했다가 이어서 ‘알아, 이 X자식아’ 하는데 좀 유치했다.”
강은영 기자(강)=“동감이다. 특히 여주인공의 대사가 80~90년대 멜로를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노을이 최지태에게 ‘아저씨 안 오면 준영이에게 갈 거다. 모두 아저씨 탓이다’등 철 지난 대사를 하는데 이런 점이 아쉽더라.”
라=“시한부 인생의 톱스타와 그의 이복형제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 경쟁을 하고, 여자의 부친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이 형제와 관련이 있는 등 극적인 사연을 최대한 모았다. 사연과 인물 관계만 보면 영락없는 막장드라마다.”
강=“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통속극이나 신파극 같다. ‘함부로 신파하게’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KBS는 ‘태후’로 로맨스의 남녀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켜 시청자의 눈을 높여놨는데, ‘함틋’으로 다시 옛날로 돌아간 분위기다. 기대작으로 여겨지던 ‘함틋’을 편성한 게 KBS에 오히려 독이 됐다.”
라=“김우빈도 오죽하면 자신의 팬카페에 밝고 명랑한 드라마 속 인물을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을까. 사생아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캐릭터 연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강=“만약 ‘함틋’이 주말극이었다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통했을지 모르겠다. 막장드라마에서 본 온갖 진부한 설정이 다 들어가 있어서 주말극으로 편성됐다면 시청률은 더 나왔을 것이다.”
조=“출생의 비밀이나 신파 등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다. 한국형 드라마에서 신파는 기본 아닌가. 캐릭터가 평면적인 게 가장 큰 문제다. 김우빈이 어머니의 꿈인 검사를 포기할 때 고뇌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등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강=“뿌리부터 잘못된 느낌이다. 김우빈과 수지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청춘 스타인데, 이야기는 진부하기만 하다. 이야기라는 뿌리가 썩으니 스타들을 활용한 여러 재미 거리를 줄기처럼 뻗어나가며 보여줄 수가 없다. 이경희 작가가 12년 전 선보인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너무 닮아 ‘복제품’을 보는 느낌이라는 말도 떠돈다. 그만큼 이야기가 낡아 보인다는 거다.”
양=“SBS 주말극 ‘그래, 그런 거야’의 김수현 작가도 현재 시청률 10%를 넘지 못해 고전 중이다. 가족이야기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아 진부하다고는 하지만, 캐릭터엔 변주가 있다. 취업준비생들을 대변하는 ‘취포자’(취업을 포기한 사람)가 등장하거나 100세 시대를 의식한 듯 60대가 재혼해 아이를 갖는 내용은 시대적인 맥락을 따라 간다. 그러나 ‘함틋’의 주인공들은 현 시대에 맞는 캐릭터가 아니다.”
강=“‘함틋’이 MBC 수목극 ‘W’에 시청률이 밀린 것도 결국 콘텐츠 때문이다. 노련한 이경희 작가와 신예 송재정 작가의 대결로도 주목을 받았지만 송 작가의 스토리가 더 힘이 있다. ‘W’는 스토리와 인물간의 관계가 워낙 탄탄하다 보니 이종석 한효주 등 배우들의 비중이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야기의 차이다.”
조=“어떤 면에선 KBS가 ‘함틋’의 대본을 보고도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애초에 드라마 콘텐츠의 질로 평가 받으려는 게 아니라 순전히 김우빈과 배수지라는 두 한류스타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양=“두 스타가 출연한 덕인지 드라마 10회 분까지 방영된 중국의 한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회당 평균 누적 조회 수가 8,000만회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반응이 없으니 KBS로서는 힘이 빠질 것이다. 제아무리 중국에서 반응이 좋아도 방송사에는 광고가 붙질 않으니 소득이 없는 거다.”
강=“KBS만의 고민도 아니다. ‘함틋’에 출연한 한 배우는 CF광고 계약을 다 미뤄두고 드라마가 끝나면 계약하려고 했단다. 드라마가 성공할 것이라 전망하고 몸값이 높아질 것을 염두에 둔 거였다. 하지만 허황된 꿈이 됐다.”
라=“‘함틋’의 패인은 사전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투적인 소재인 시한부 삶, 사생아, 사각관계 등이 반복되는 한 사전제작의 의미는 없다. ‘태후’는 진부한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생기를 불어넣어 성공했다.”
강=“‘태후’의 성공으로 중국 등 해외 판매를 위해 사전제작 드라마에 열을 올렸던 KBS는 ‘함틋’의 실패로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올 겨울 방송예정인 사전제작 드라마 ‘화랑: 더 비기닝’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정성효 KBS 드라마사업부 센터장은 멜로드라마는 사전제작을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 ‘태후’가 왜 성공했는지 되짚어보질 않은 게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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