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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의 전설 어니 파일

입력
2016.08.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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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8월 3일

종군 기자의 전설 어니 파일.
종군 기자의 전설 어니 파일.

미국의 종군기자 어니 파일(Ernest Taylor Pyle, 1900~1945)은 유럽의 노르망디 해안에서부터 태평양 전선의 일본 오키나와 이오지마까지, 2차대전 전역(戰域)의 전역을 두루 겪은, 그것도 후방 작전사령부가 아닌 최전선의 병사들과 함께 경험한 유일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는 목숨 건 일이라면 기자도 목숨을 걸어야 온전한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여겼고, 그 신념을 좇다가 전장에서 숨졌다.

미국 인디애나주 다나(Dana)에서 태어난 그는 17살해 해군에 입대, 1차대전의 마지막 3개월을 군인으로 복무했다. 인디애나대학 재학시절 학보사 기자를 했고, 졸업 후 지역 신문사를 거쳐 워싱턴D.C의 워싱턴데일리뉴스 기자로 일했다. 26년 신문사가 26세의 그를 내근 에디터로 발령내자 그는 사표를 쓴다. 그는 현장을 누비며 기사 쓰는 일을 좋아했다.

그리곤 한 해 전 결혼한 아내와 함께 약 2년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숱한 이들을 만난다. 28년 신문사에 복귀해 약 4년간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쌓았고, 32년 다시 에디터가 되자 금세 장기 휴가를 내고 다시 여행, 그 이야기를 칼럼으로 썼다. 편집국에 갇히기 싫어 그렇게 나고 들기를 반복하는 사이, 평범한 시민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그의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가 늘어났다.

전쟁이 나자 그는 곧장 종군기자를 자원,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는 장군과 참모들이 머무는 후방이 아니라 ‘평범한 병사(everyman)’들의 전장을 따라 다니며 전황이 아닌 참호의 전투 소식을 전했다. 그의 기사에는 유럽 지도와 전사자 숫자 대신 특정일 이름 없는 한 마을의 전투 상황과 전사자의 이름이 담기곤 했다. 44년에는 공군 조종사의 비행 수당처럼 보병 전투 수당도 지급하라는 글을 썼고, 의회는 월 10달러의 수당을 신설하는 ‘어니 파일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44년 퓰리처상을 탔다.

그는 자기 기사를 못마땅해하며 슬럼프에 빠지곤 했고, 병사들처럼 ‘전쟁 신경증’을 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럽 전쟁이 끝나자마자 막바지 전투가 치열하던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오지마의 전장에서 일본군의 기관총에 숨을 거뒀다.

1983년 미국 정부는 전투 중 부상자나 전사한 병사에게 주는 퍼플하트 훈장을 그에게 추서했다. 오늘은 (종군)기자의 전설인 그의 생일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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