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누가 ‘을’인가, 공급률 둘러싼 출판계 치킨게임

입력
2016.07.14 16:36
0 0
지난달 초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을 찾은 사람들이 매장에 마련된 대형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초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을 찾은 사람들이 매장에 마련된 대형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오버워치가 아닌 ‘불행 배틀’이다. “죽겠다”란 말에 “내가 더 죽겠다” 란 말이 꼬리를 물고, 갈수록 적어지는 파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1%를 제외한 나머지 99%가 이 게임판에 뛰어들고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서점 공급률 인상으로 출판계가 갑론을박이다. 문학동네는 지난 9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도매서점의 문학서 공급률을 60%에서 63%로 인상하고 대신 인문서와 학술서는 각각 70%에서 68%로, 75%에서 73%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공급률은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책값의 정가대비 비율이다. 1만원짜리 책을 6,000원에 넘기다가 이제 6,300원에 팔겠다는 얘기다.

서점업계에서 난리가 났다. 공급률을 올릴수록 서점의 이익이 줄기 때문이다. 소규모 서점 사장들은 “작은 서점들을 다 죽일 셈이냐”며 반발했다. 소매서점단체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와 한국서점인연합회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몇몇 서점들은 판매대에서 문학동네 책을 빼기도 했다.

서적 공급률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문학동네는 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공급률 인상을 알렸을까. 공급률 인상이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란 문학동네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른 출판사들은 왜 가만히 있을까.

사실 공급률 논란의 진짜 주체는 출판사와 대형 온ㆍ오프라인서점이다. 책 10권을 사가는 동네서점과 1,000권을 사가는 대형서점 중 출판사의 표적이 후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동네 이전에도 공급률 인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중견 출판사는 올해 초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등과 공급률 인상 협상을 하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한 출판계 종사자는 “도서시장에서 대형서점은 절대 ‘갑’”이라며 “베스트셀러를 내는 출판사는 협상할 시도라도 해보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당장 수금이 막히기 때문에 요구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출판사들이 합심해서 공급률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 그는 “각 출판사마다 공급률이 다르다. 공급률이 50% 아래인 곳도 수두룩하다”며 “대형서점들이 필사적으로 (문학동네의 요구를)막는 이유다. 하나를 올려주면 줄줄이 다 올려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네서점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문학동네는 SNS를 통해 5월에 대형서점들과 공급률 협상하려고 했지만 인상안 검토는 고사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아 지난달 도매서점과 협상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도매서점 공급률을 올리지 않으면 대형 서점 공급률도 올릴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문학동네 측은 “대형서점 공급률이 65%, 도매서점 공급률이 60%인데 대형서점 공급률만 올리면 그들은 출판사가 아닌 도매서점에서 책을 사면 된다”며 “도매서점 공급률이 변하지 않는 한 대형서점들은 공급률 인상 요구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매서점도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일방 통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는 “이렇게라도 하니 비로소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것”이라며 “알라딘은 인상안을 받아들였고 다른 곳들과 3.5% 인상을 놓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는 문학동네의 신간을 살 수 없다. 합의가 안 되니 배본이 막힌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말에 대형서점들은 문학동네 서적을 대량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에 미리 대비한 것이다.

공급률 논란은 2014년 말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때부터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할인폭이 제한되면서 서점의 마진은 늘었지만 판매량이 줄어 출판사 경영 사정이 악화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고, 예상대로 지난해 주요 출판사 10곳 중 6곳의 매출이 감소(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집계)했다.

전체 파이가 줄어들면서 어김없이 ‘불행 배틀’이 벌어졌다. 동네서점이 죽겠다 하고, 출판사도 죽겠다 하고, 그 한 구석에서 1인 출판사는 정말 죽을까 봐 죽겠다는 소리도 못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윤태용 문화콘텐츠산업실장 주재로 서점연합회 회장과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등 대형서점 대표, 대한출판문화협회 및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가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공급률 조정은 정부가 개입하기 민감한 영역이지만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조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저마다 내가 진짜 ‘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가 아닌, 구조 개선을 통한 근본적 해법이 나오는 자리여야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