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깊이 읽기] 영국 탈퇴로 작아진 EU, 더 찢길까 더 뭉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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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깊이 읽기] 영국 탈퇴로 작아진 EU, 더 찢길까 더 뭉칠까

입력
2016.07.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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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5일 런던의 유럽광장에서 EU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단기적 세력 축소 불가피하지만…

장기간 찬반 토론 거친 국민 결정

충동적 ‘그렉시트’식 번복 어려워

英 승승장구 땐 EU 해체 우려도

“의무 회피하며 권리 주장 안 돼

프랑스·독일 등 反영국 정서 심화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를 결정한 지 일주일 남짓한 시점에 유럽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 영국이 없는 유럽연합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앞으로 유럽과 영국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될지, 그리고 영국 국민이 투표로 결정한대로 정말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하게 되는 것인지 그 무엇도 확실치 않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국민투표라는 무책임한 ‘도박’을 벌인 뒤 패배하자 책임을 지고 가을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탈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떠벌리던 보수당 지도자 보리스 존슨은 이제 탈퇴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오리발’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정상들은 회의를 열고 영국 정부가 국민의 결정을 신속하게 이행하라고 공동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의 리스본 조약은 탈퇴를 원하는 국가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신청을 해야만 2년 기한의 탈퇴협상을 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좌에서 떠나는 캐머런이나 투표에서 승리한 존슨 모두 막상 탈퇴를 실현하는 데는 늑장을 부리겠다는 심산이다. 유럽연합의 입장에서는 되도록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여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해하려면 지난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의 사례를 잠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국민은 2015년 7월 국민투표를 통해 그렉시트를 불사하겠다는 극좌 시리자 정권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는 국민을 배반하고 유럽연합의 요구에 굴복하면서 그렉시트를 피했다. 그리고 9월 총선을 다시 치러 국민에 대한 정부의 배반을 사후 승인받는 절차를 거쳤다. 말하자면 국민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국민투표로 탈퇴도 무릅쓰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부는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여 굴욕적 조건을 받아들이며 무릎을 꿇었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영국에서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리스 국민투표는 사상 최초로 집권한 미숙한 극좌 정권이 유럽연합과 협상과정에서 일주일 만에 치러버린 충동적 이벤트에 가깝다. 반면 영국의 국민투표는 캐머런 총리가 오래 전부터 예고해 왔으며, 올 상반기 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 찬·반 캠페인을 벌인 매우 신중하고 심각한 집단 선택이었다. 총선보다 높은 투표율의 국민 결정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모로 영국은 되돌아갈 다리를 불사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그들대로 약이 올라 무척 흥분한 상태다. ‘유럽의 여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의무를 회피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영국과의 미래 협상에 단호하게 임할 것임을 예고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의 탈퇴에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대륙의 반(反) 영국 정서가 얼마나 강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준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의도적으로 영어를 회피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연설을 했다. 그는 또 탈퇴 캠페인을 주도했던 영국독립당(UKIP) 나이젤 파라지 의원을 향해 “더 이상 유럽의회에 나타나지 말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집행위원회의 금융담당 집행위원인 영국인 조너선 힐은 지난 주 사임했고, 올 7월 1일부터 유럽 순회의장국을 맡을 예정이었던 영국의 차례는 취소되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이번 주 유럽정상회담은 영국을 제외한 27개국끼리만 협의를 하고 나서 캐머런을 동참시켰다. 영국에 대한 가시적 견제가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유럽연합은 영국의 탈퇴로 취약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독일 다음으로 커다란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세력이다. 인구 5억이 넘던 유럽연합의 단일시장은 영국이 빠지면 4억4천만 명 수준으로 축소된다. 게다가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자유주의적 성향의 국가로 유럽의 무역과 시장을 자유롭게 유지하는데 강한 목소리를 내온 세력이다. 또한 정치 및 군사적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 안보의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 빠져버리면 유럽이 작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탈퇴의 움직임이 유럽 대륙으로까지 번져 확산되는 일이다. 말하자면 브렉시트가 ‘유럽 해체’의 시발점으로 작동하는 시나리오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극우 민족주의가 득세하여 집권이라도 한다면 유럽연합의 핵심 축이 흔들릴 수도 있다. 여기서 관건은 탈퇴의 선두주자 영국의 운명이다. 뛰쳐나간 영국이 승승장구한다면 유럽의 해체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면 스코틀랜드 독립 등으로 영국이 분해되고 영국경제가 휘청거린다면 역으로 탈퇴를 피하려는 노력이 유럽의 대세일 것이다.

‘더 강한 유럽’ 계기 될 수도

美·日에 밀리고 통화위기 오자

단일시장·화폐 출범으로 맞대응

이번에도 결속력 강화 이어질 듯

“통합을 늦추는 브레이크 뗐다”

대륙 유럽주의자들은 환호 중

작아진 유럽, 흔들리는 유럽이 더 강한 유럽의 동력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유럽통합의 역사를 보면 위기가 더 강한 통합의 기회로 전환된 사례가 빈번하다. 유럽이 미국과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던 1980년대 유럽은 단일시장을 만들어냈다. 1992~93년 유럽통화위기를 겪은 뒤 유럽은 단일화폐를 출범시켰다.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유로가 위기에 처하자 유럽은 유럽중앙은행을 강화하고 금융연합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중이다. 영국의 탈퇴는 나머지 회원국에 대한 철저한 내부단속과 결속력으로 이어지면서 통합을 심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970년대 뒤늦게 유럽통합의 배에 올라탄 뒤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던 영국에 대해 대륙의 유럽주의 세력은 브렉시트를 기뻐하고 있다. 세계 언론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들은 영국의 탈퇴를 유럽의 축소라기보다는 통합을 늦추는 브레이크를 떼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유럽통합의 미래는 물론 세계 민주주의에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직접 민주주의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매우 복합적인 쟁점을 결정하는 데는 부적절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처럼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한 쟁점에 대한 결정을 국민투표로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잔류와 탈퇴로 인한 미래의 결과는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렵다. 이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찬·반의 국민투표는 다양한 반대세력의 일시적 결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불만만 표출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둘째, 무책임한 정치권의 행태는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영국에서 가장 무책임한 정치인은 캐머런이다. 그는 이번 브렉시트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독립의 문제를 놓고서도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승부사’의 모습을 보였는데, 한번 성공하고 한번은 실패했다. 현상유지와 대변화 사이에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벼랑 끝 전술로 재미를 보았지만 이 꼼수는 결국 한번의 실패로 영국을 유럽으로부터 장기적으로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파라지와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는 물론 보수당 지도자 존슨이 보인 감정 자극의 캠페인도 차분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 존슨처럼 런던 시장까지 역임한 기존 보수당의 지도자가 “유럽을 탈퇴해도 영국 경제는 끄떡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자 많은 유권자는 순진하게 그를 믿었다.

셋째, 국민의 모든 불행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유럽연합이 자신의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탈퇴만 하면 행복한 세상이 열릴 듯이 설쳤다. 유럽대륙의 많은 극우·극좌의 세력들도 유럽이 만병의 근원이라며 유럽에서 탈퇴하면 만사형통이라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처럼 보호주의만 하면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도 무책임한 과장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장기적 국익의 추구가 아니라 단기적 집권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전후하여 한국에서 유럽을 바라보며 특별히 아쉬운 점은 한국 언론의 영미 편향이다. 영자 언론의 보도만을 토대로 분석하다 보니 막상 유럽 중심의 시각과 논쟁은 사장되고 영국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유럽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고 중심이 되기를 원치도 않았다. 이것이 브렉시트의 거시적 배경이고 현실이다. 유럽의 중심은 여전히 독일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이고, 베네룩스이다. 영국의 탈퇴로 유럽은 작아졌지만 더 강한 유럽의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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