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과 무명을 구분짓는 시대, 물음표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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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과 무명을 구분짓는 시대, 물음표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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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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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작가는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엮어 화면보호기로 만든 작품 '/Savior'(2016)에 대해 "작가로서의 자아를 보호해줬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김희천 등 젊은 작가 7명 참여

“유명을 가치, 무명을 무가치와

동일시 하는 세태에 대한 고민”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작업을 하는 자아와 일을 하는 자아 사이에 줄다리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동영상 촬영은 작업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작업을 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는 장치였죠.”

영상작가 김희천(28)은 지난해 6월부터 1년 동안 촬영한 동영상 1,600개를 엮어 화면보호기로 만든 작품 ‘/Savior’(2016)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개별 영상들은 별다른 내용을 갖고 있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직장 생활과 작업 활동을 병행했던 그에게 동영상 촬영은 행위 자체로 스스로 작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작가로서의 자아가 상하지 않도록 보호했던 동영상을 그는 모니터가 상하지 않도록 임시로 작동되는 화면보호기로 재미있게 제시했다. 키보드나 마우스에 작은 조작만 가해도 사라지는 화면보호기의 성질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직업’과 ‘작업’ 사이를 오갔던 김희천 작가 자신의 비유기도 하다. “일을 할 때만큼은 ‘작가처럼 굴지 말아야지’ 다짐하는데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금방 작가처럼 굴고 있더라고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국제갤러리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그룹전 ‘유명한 무명(Wellknown unknown)’을 7월 31일까지 열고 있다.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가 전시의 특별 큐레이터로 초빙됐으며, 김영나, 김희천, 남화연, 베리띵즈, 오민, 이윤이, EH 등 7팀이 작가로 참여했다. ‘유명한 무명’이라는 제목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 각자 다른 관점으로 구현한 미디어, 설치, 디자인, 사진 작업 등은 하나의 주제로 부자연스럽게 묶이기보다 각자 다른 대로 자연스럽게 전시장을 채운다.

'유명한 무명' 전시 기획을 맡은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유명한 무명’에는 유명을 가치와, 무명을 무가치와 동일시하는 현실에 대한 기획자 김성원 교수의 고민이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8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는 현 세대에 던지는 일종의 질문”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유명’과 ‘무명’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국제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과연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국제갤러리는 규모나 영향력 등에서 손 꼽히는 갤러리인데다 지금까지 유명한 작가들 위주로 소개해 왔잖아요. 관람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번 전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겠죠.” 또 김성원 교수는 소위 ‘스타 작가’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미술의 시스템 하에서 “오로지 유명해지겠다는 일념만으로 질주”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서도 반추했다.

스스로 "미술에 속한다 해야 할지 상업에 가깝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크리에이터스 그룹 베리띵즈의 'Very New Nature'(2016). 국제갤러리 제공

‘유명한 무명’이라는 역설의 표현은 또한 참여 작가들의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제가 주목했던 작가 대부분은 미술 전공자가 아니더라고요.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유명한 무명’ 전략이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로 김희천 작가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현재 영상 작업을 주로 선보이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 직장 생활과 작업을 병행했다.

현재 4인으로 구성된 베리띵즈는 스스로를 ‘직원’이라 부르는 크리에이터스 그룹으로 실내 디자인, 조경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작가로서 유명세를 떨치는 데만 치중하지 않고 미술과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가 역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겠냐는 게 그의 분석이다. 유명과 무명을 구분 짓는 시대에 기획된 ‘유명한 무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유명을 향해 질주하며 유명에 좇기지는 않았는지, 유명해지면서 동시에 다시 무명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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