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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체감 실업률 100%... ‘빵’ 없이 자유만 부르짖을 수 없다”

입력
2016.06.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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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대 졸업장도 휴지 조각

연이은 테러로 관광산업 붕괴

피라미드 주변 황량한 모래바람만

국민 40%가 하루 벌이 2달러

엘시시 독재, 경제發 경고음

軍이 장악한 경제 선전용 사업만

수익성 고려 없어 혈세로 메꿀 판

시스템 무너져 지하경제만 성장

산발시위가 결집 가능성 높아

지난달 17일 찾은 이집트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해방) 광장. 실업률이 20%에 달하는 가운데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이집트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해방) 광장. 실업률이 20%에 달하는 가운데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기자의 피라미드. 관광버스로 빼곡해야 할 피라미드 주변은 한산하다
지난달 17일 찾은 기자의 피라미드. 관광버스로 빼곡해야 할 피라미드 주변은 한산하다
한산한 피라미드 주변 모습
한산한 피라미드 주변 모습

이집트 명문 카이로대 4학년 셰이프 알리(25)의 졸업 후 희망직업은 택시기사다. 월급은 약 2,000이집트파운드(약 30만원)다. 그마저도 지원자가 몰려 채용이 쉽지 않다. 2014년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이집트의 청년 실업률은 43%. 지난달 17일 카이로대에서 만난 그는 “이집트 대학생의 3대 인기 직장은 택시기사와 콜센터 직원, 그리고 군인”이라며 “체감 실업률은 100%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알리씨와 함께 카이로대를 다니는 무하마드 라흐니(28)의 하루 생활비는 약 1달러다. 1파운드(약 150원)짜리 ‘마이크로버스(무허가 승합차)’로 통학을 하고 2파운드짜리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2011년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던 그는 “심지어 카이로대 졸업장도 휴지조각인 상황에서 언제까지 자유를 부르짖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며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중동ㆍ아프리카 지역을 호령했던 이집트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혁명을 이룬 뒤 심각한 경제난에 처했다. 이집트 국민들이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의 정치적 독재를 묵인하는 배경에도 ‘경제 부흥’ 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민들의 인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을 경우 새로운 혁명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혁명과 함께 붕괴된 이집트 경제

이집트의 경제는 민주화혁명 후 처참하게 무너졌다. 혁명 전 350억달러(40조3,200억원)를 넘던 외환보유액은 무역적자와 관광산업의 붕괴로 2015년 164억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물가는 한해 10%씩 오르고 실업률은 20% 수준이다. 혁명 전 5%대였던 경제성장률은 1~2%대에서 오를 줄을 모른다. 이집트 국민 40%는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하는 극빈층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테러로 인한 관광산업의 붕괴가 꼽힌다. 이집트에서는 지난해 6월 검찰총장 암살, 10월 이집트발 러시아 여객기 폭탄 테러(224명 사망), 지난달 프랑스발 여객기 추락(66명 사망) 등의 사고가 이어졌다. 테러의 배후로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나 무장정파 하마스 등이 꼽힌다. 이로 인해 2010년 2,773만명에 육박했던 관광객은 2013년 869만명으로 추락한 채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때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했던 관광산업은 2014년 2%대로 폭락했다.

관광객이 뚝 끊긴 세계적 관광지 피라미드 주변에는 황량한 모래뿐이었다. 지난달 16일 찾은 기자(Giza) 피라미드의 관광객은 80여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서양 관광객은 10여명도 안 돼 보였다. 한 한국 교민은 “이집트혁명 전만해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류의 집합소 같았다”며 “지금은 관광객보다 낙타를 태우려는 호객꾼이 더 많다”고 씁쓸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와의 전쟁’을 내건 엘시시 대통령이 바로 테러의 원인으로 꼽힌다. 쿠데타로 이슬람성향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실각시킨 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의 보복성 공격이 잇따르는 건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집트 내부에서는 “국방장관 출신 엘시시가 대통령이 됐는데 치안은 오히려 나빠졌다”는 불만도 팽배해지고 있다.

혁명과 상관없는 후진적 경제 시스템이 문제

이집트의 후진적 경제 시스템도 문제다. 지난달 15일 이집트 은행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8.1파운드였지만 사설 환전소에서는 11.3파운드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만큼 ‘지하 경제’가 크다는 의미다. 카이로 도심에서는 미완공 건물에 주민이나 상점이 입주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집트 주재 한국정부기관 관계자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일부로 완공을 미룬 것”이라며 “이집트의 허술한 경제 시스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집트는 과거 독재자 가말 압델 나세르(1954~70년), 안와르 사다트(1970~81년), 호스니 무바라크(1981~2011년)까지 무려 60여년간 군사정권이 이어지며 약 46만명의 군인이 정치ㆍ경제ㆍ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전문 행정 영역이 발달하지 못했고, 민간 기업의 성장도 불가능했다. 파스타 생산부터 TV조립까지 대부분의 산업을 꿰찬 국영(군부) 기업은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9,000만의 내수시장을 가졌으면서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는 이유다. 시민단체 이집트자유완권리위원회(ECPR)의 무함마드 로프티(38) 부소장은 “이집트에서는 사업을 하기 위해 군대 소령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군이 장악한 경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산업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엘시시 군부 정권도 다를 바 없다. 경제구조의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정권은 대규모 건설 사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수에즈 제2운하’다. 당초 3년이 예상되던 공사는 엘시시 대통령의 독촉으로 지난해 8월 1년만에 완공됐다. 이집트 내에서는 엘시시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치솟았고, 경기가 곧 회복되리란 기대감이 커졌다. 이집트 정부는 개통식이 열리는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 운하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운하 수입은 전월보다 2,330만달러가 감소한 4억4,880만 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저유가로 연료비 부담이 줄면서 막대한 운하 통행료(약 25만달러)를 내는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선박이 늘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엘나딤센터의 아이다 세이프 엘다울라 소장은 “엘시시는 신행정수도, 발전소, 도로 등 ‘메가 프로젝트’를 줄줄이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경제 성장의 환상을 심어줬다”며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프로파간다(선전)로,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가 독재 붕괴 부를 수도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실패가 순전히 군부의 쿠데타 탓만은 아니다. 2013년 당시 이집트 최초의 민선 대통령 무르시를 축출한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려 97%의 득표율로 다음해 대통령에 올랐다. ECRF의 로프티 부대표는 “무르시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혼란이 이어지자 이집트 국민이 자유 대신 빵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시민단체 관계자나 지식인들은 ‘엘시시 대통령은 경제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엘나딤센터의 엘다울라 소장은 “국민들이 정치적 억압을 인내하는 대가로 일 할 기회와 임금 상승 등의 번영을 기대하지만 지금 정부는 국민에 제공할 ‘뇌물’이 없다”며 “빵을 선택했던 국민들이 점차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AUC의 에이미 홈즈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이집트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발적 시위는 오히려 무바라크 때보다 많다”며 “언제든 대규모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이집트)=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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