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우리는 함께 살아남겠다”

입력
2016.06.10 20:00
0 0

강남역 사건에 함께 분노한 여성들

구의역으로 이어진 약자들의 연대

거스를 수 없는 물결로 번져가기를

5월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를 포스트잇으로 뒤덮으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죽어간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5월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를 포스트잇으로 뒤덮으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죽어간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강남역 부근 화장실 살인사건을 우발적 살인을 넘어 여성혐오 범죄로 이슈화하는 계기가 됐던 언명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에서도 기필코 필연의 구조를 들춰내려는 직업적 단련 탓일까, 부끄럽게도 나는 사태 초반 저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여성들의 절규가 세대와 성별을 넘어 울림을 빚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그 안에 담긴 뜨거운 연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삶을 돌아봤다. 보수적이되 품격을 따졌던 가정에서 나고 자라, 차별이 있으되 야만적이지는 않았던 직장에 터잡고,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 열에 일고여덟은 남자였던 이 바닥에서 일 야근, 술 야근 번갈아 하며 험하게 살았으되 아주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던 삶. 내가 한 것이라곤 ‘여자라서 할 수 없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투성이’인 현실 앞에 맥없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버틴 것뿐이었다. 그러니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 역시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해야 할 터이다.

우연히 살아남기까지, 부당한 관습에 격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기검열을 내재화하고 세속적 기준과 평판에 알게 모르게 휘둘려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빠의 성(姓)을 가졌으되 엄마의 성(性)을 물려받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운답시고 마냥 엄모(嚴母)이기를 자처했고, 차별과 편견에 힘겨워하는 동성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공감보다는 “그러니 눈물 감추고 무조건 독해지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개개인이 독해지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절대 넘을 수 없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강남역 사건과 추모 열기를 다룬 한국일보 5월 20일자 1면 톱 기사에는 ‘극단으로 치닫는 여성혐오…“무섭지만 굴하지 않겠다”’는 제목이 달렸다. 이 사건을 여성혐오의 극단적 결과로 규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여성들의 대처에 더 주목한 것이다. SNS에서 울분을 토하던 2030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를 저마다의 고백과 간절한 바람을 담은 포스트잇으로 뒤덮으며 함께 분노하고 외쳤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여성들은 무서워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무섭지만, 무서워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당부를, 그들은 이미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일궈낸 ‘강남역 현상’에서 더 주목할 것은 그들만의 연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에서 ‘여혐 대 남혐’같은 한참 빗나가고 소모적인 논쟁이 없지 않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치열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공동행동’ 집회를 열며 연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포스트잇 추모 열기는 뒤이어 벌어진 19세 청년노동자의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현장으로 이어지며 ‘위험의 외주화’란 고질적 병폐에 책임을 물었고, 신안 여교사 집단성폭행 사건에서 고작 섬 파견근무를 남자 교사들로 대체한다는 ‘대책 없는 대책’을 내놓은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모두가 경쟁에 내몰려 각자도생에 골몰하는 사이 극소수의 외로운 싸움 혹은 반짝 현상으로만 남았던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가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힐러리 클린턴이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통령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역사적 이정표’ 운운하는 미국에 앞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여전히 소수지만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부순 여성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대다수 여성의 힘겨운 삶이 절로 나아질 리 없다. 나아가 진보적 인사 몇몇이 자치단체장이 된다고, 무능하고 뻔뻔한 정권을 심판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낸다고, 차별과 공포가 만연한 사회가 쉽게 바뀔 리 없다. 이 귀한 ‘약자들의 연대’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로 번져가기를 바란다.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