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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위로 성장... '노희경 월드'가 담고 있는 것

입력
2016.06.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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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는 노년의 삶을 전면으로 내세운 tvN 드라마‘디어 마이 프렌즈’에 대해 “부모 있는 사람들의 부모 이야기가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tvN 제공
노희경 작가는 노년의 삶을 전면으로 내세운 tvN 드라마‘디어 마이 프렌즈’에 대해 “부모 있는 사람들의 부모 이야기가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tvN 제공

“일상은 안 그래도 한숨 나올 일 투성인데 드라마에서까지 울고 짜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겉모습은 번지르르한데 실상은 구질구질한 사연으로 범벅 된 인물과 그들이 내뱉는 대사가 거북하다.”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인기 작가 노희경(50)의 작품이 싫다는 시청자들이 주로 내놓는 반감의 이유들이다. 배우들은 어떨까. 조인성과 송혜교 정우성 현빈 등 당대 가장 빛나는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모시고도 출연작 중 최저시청률이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많은 시청자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도 않고, 스타들도 출연을 꺼릴 만도 한데 노희경은 국내 방송가의 주요 인물로 종종 꼽힌다. 충성도 높은 소수 시청자들만이 그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노희경의 ‘그들이 사는 세상’(20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에 출연한 송혜교는 “인생의 멘토”라며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낸다. 50년이 넘는 연기경력의 배우 김혜자는 “내가 먼저 노희경씨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그를 치켜세운다. 배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드라마 작가로선 드물게 강력한 팬덤까지 형성하며 ‘노희경이 사는 세상’을 구축한 비결은 무엇일까. 울고 짤 일 넘쳐나는 현실과 남이 알까 무서운 구질구질한 사연을 짊어진 우리에게 ‘괜찮아, 우리 다 똑같다’며 던지는 위로가 21년 동안 노희경이 방송가에서 장수한 요인으로 꼽힌다.

노희경 작가의 KBS ‘굿바이 솔로’(위 사진)는 가족해체와 인간의 고독을 그렸고,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의 병을 가진 현대인들의 삶을 다룬다. KBS·SBS 제공
노희경 작가의 KBS ‘굿바이 솔로’(위 사진)는 가족해체와 인간의 고독을 그렸고,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의 병을 가진 현대인들의 삶을 다룬다. KBS·SBS 제공

괜찮아, 그게 인생이야

노희경은 화려한 겉모습 속에 마음의 병을 감추고 사는 현대인들을 줄곧 바라봐 왔다. 명문대를 졸업한 그럴 듯한 학벌에 교수 남편과 유학간 아들딸 자랑을 일삼는 ‘굿바이 솔로’(2006)의 영숙(배종옥)은 알고 보면 가족에게 외면 받은 고독한 솔로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도, ‘디어 마이 프렌즈’도 잘나가는 듯하면서도 사랑을 갈구하거나 외로움에 사무친 여성들의 내면을 그려낸다.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인 인간도 결국 콤플렉스 덩어리인 불완전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주제의식은 정신 장애를 다룬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를 통해 극대화됐다. 조현병을 앓는 추리소설가(조인성),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정신과 의사(공효진), 투렛증후군(틱 장애)을 앓는 카페 종업원(이광수)을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에서 노희경은 마음의 병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당시 노희경은 “(정신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마음에 상처 없는 사람이 없는데 보호하고 이해하면 된다”며 집필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조현병에 걸린 남자주인공이 적극적인 치료와 주변의 도움으로 병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려내 대한조현병학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노희경 작가는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딸만 보고 평생을 살아온 엄마와 그런 엄마를 사랑하지만 부담스러운 딸의 관계를 그린다. tvN 제공
노희경 작가는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딸만 보고 평생을 살아온 엄마와 그런 엄마를 사랑하지만 부담스러운 딸의 관계를 그린다. tvN 제공

아주 많이 불편한 엄마

‘나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가 아주 많이 불편하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부모는 물론 남편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외동딸인 자신에게만 의지하며 살아온 엄마 장난희(고두심)를 떠올리며 딸 박완(고현정)이 하는 독백이다.

노희경은 마음의 결핍을 가진 엄마와 그의 존재를 버거워하는 딸의 관계를 드라마의 큰 줄기로 삼곤 했다. 도박중독에다가 딸 친구 아버지와 바람까지 난 엄마(‘그들이 사는 세상’), 전신마비인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춘 엄마(‘괜찮아 사랑이야’) 그리고 남편의 외도에 어린 딸에게 농약을 건넨 엄마(‘디어 마이 프렌즈’)까지. 인생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엄마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결국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딸의 모습을 즐겨 묘사해 왔다.

드라마 속 세세한 사연은 각각 다르나 노희경의 인생에 엄마란 존재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노희경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작가의 말에서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내세에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다시 그녀의 막내딸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고백한 바 있다.

노희경 작가는 배우의 성장을 이끄는 작가란 평가를 받는다. 2008년 KBS ‘그들이 사는 세상' 제작발표회 때 노희경(왼쪽) 작가와 송혜교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KBS 제공
노희경 작가는 배우의 성장을 이끄는 작가란 평가를 받는다. 2008년 KBS ‘그들이 사는 세상' 제작발표회 때 노희경(왼쪽) 작가와 송혜교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KBS 제공

오락을 예술로 만든 저력

노희경은 30~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본적이 없다. 작품성보다 수익성이 예전보다 더 중요해진 방송환경에서 그의 입지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노희경 자신도 “(내 드라마가)돈 안 되는 드라마니까 걱정이 많다”며 “한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제작 환경에서 내 드라마가 받아들여질지 고민”이라고 최근 털어놨다.

하지만 노희경표 드라마를 수익성만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의 드라마는 늘 화제를 모았다. 가족해체와 현대인들의 고독함, 노년의 삶 등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뚝심 있게 드라마에 반영해왔기에 가능한 결과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노희경을 두고 “드라마의 격을 높인 작가”라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오락 정도로 여겨진 드라마를 문화적인 성찰이 가능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작가”라며 “시대와의 탁월한 공감능력과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그를 지속적으로 원하는 이유”라고도 말했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도 “드라마를 통해 내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노희경을 평가했다.

젊은 배우들의 성장 발판 역할을 해온 것도 노희경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김민희, 한고은, 송혜교 등 연기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배우들은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가능성을 인정 받고 연기 잘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정석희 평론가는 “노희경 작품들에서 배우들은 다 연기력이 는다”며 “공감 가는 대사를 통해 배우가 캐릭터에 몰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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