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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벌컨상 수상 아직도 얼떨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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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벌컨상 수상 아직도 얼떨떨해요"

입력
2016.06.0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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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희 미술감독은 "좋아하는 중국 한 유명 감독으로부터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환상이 깨질까 봐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류성희 미술감독은 "좋아하는 중국 한 유명 감독으로부터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환상이 깨질까 봐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충무로 최고 스태프를 꼽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종종 언급된다. 작품들 면면만 봐도 영화계에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으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국제시장’과 ‘암살’이 최근의 결과물이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괴물’ ‘마더’ ‘변호인’ 등 완성도 높은 흥행작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충무로가 오래 전 인정한 실력은 최근 해외에서도 공인 받았다. 지난달 열린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아가씨’로 벌컨상을 수상하며 류성희(48) 영화 미술감독의 재능이 새삼 부각됐다.

벌컨상은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의상감독 등 기술 스태프에게 주어지는 칸영화제의 번외 특별상으로 류 감독은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다.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은 “존경하는 해외 영화인들이 받았던 상이라 아직은 수상 사실이 실감 나지 않고 제 이름과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국내 미술감독 중 선구적인 인물로 꼽힌다. 미술감독은 세트와 소품, 의상 등 영화의 시각적 요소를 다루는 분야를 전담한다. 영화감독과 영화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상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류 감독은 1990년대 중반 미국 유학 길에 오른 뒤에야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언어과정을 밟던 중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영화 스태프 양성과정을 알게 된 뒤 지원했다. “한국영화가 방화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일하다 (과로로) 입 돌아가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한 당시 한국영화계에선 일할 생각이 없어” AFI를 졸업한 뒤 1년 반 가량 동안 미국 영화 현장에서 일했다. 정상급 미술감독이라는 꿈을 키우며 미국 생활을 견뎌내던 류 감독은 어느 날 왕자웨이 감독의 홍콩영화 ‘동사서독’을 보고 귀국을 결심했다. 훗날 ‘화양연화’로 벌컨상을 공동수상한 장수핑 미술감독과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참여한 무협영화였다.

“서부극 속 조그만 바를 만드는 작업을 마친 뒤 집에 들어와 영화를 보고선 눈물을 흘렸어요. 한 지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적 전통은 공부를 한다고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조그만 재주라도 있다면 아시아나 한국영화에 쏟아 붓자고 결심했어요. 2주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류성희(왼쪽) 미술감독이 '아가씨' 촬영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장면 연출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류성희(왼쪽) 미술감독이 '아가씨' 촬영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장면 연출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영화 '아가씨'의 거대한 서재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영화 '아가씨'의 거대한 서재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에 돌아왔으나 류 감독의 작업 영역을 충무로는 낯설어 했고 일거리도 없었다. “촬영 전공을 하지 않은 걸 크게 후회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직접 만든 명함을 영화사에 돌리며 이름을 알렸다. “미술감독의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쟤 뭐지?’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고 류 감독은 돌아봤다. 폴란드 유학파인 송일곤 감독의 장편데뷔작 ‘꽃잎’으로 첫 일감을 따냈고, ‘피도 눈물도 없이’의 미술감독을 맡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윤제균 등 충무로의 대표 감독 등과 작업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류 감독은 “주요 감독들과 중요한 작품들을 하며 영감도 많이 받았고 의욕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벌컨상을 안겨준 ‘아가씨’에 대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설렘이 컸다”고 말했다. 왜색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암살’은 친일파와 독립군이 나오니 대립 구도가 선명한데 ‘아가씨’는 외관상 일본 색채만 강조돼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류 감독이 박찬욱 감독, 여려 스태프와 빚어낸 ‘아가씨’ 속 장면들은 탐미적이다. 서양과 일본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 외관, 거대한 서재와 실내 일본 정원 등이 눈길을 잡는다.

“귀국한 뒤 정말 입이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일해 왔다”는 류 감독은 이제 스스로 새 출발선에 서고자 한다. “제가 이제 경험이 쌓였으니 조합이든 회사든 조직을 만들어 재능 있는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소속감을 가지며 지속적으로 일해 전문가들이 양성 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에 요즘 관심이 많습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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