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혁신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는 새누리당이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당선자 총회를 통해 비대위와 혁신위 분리를 결정하고 인선을 한 게 불과 10여일 전이다. 우왕좌왕하는 새누리당의 혼란상은 다수계파인 친박계에 휘둘리는 당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총선 참패에 따라 요구되는 당 쇄신에 대한 명분이 힘에 의해 희석되고, 계파 이해에 원칙마저 흔들리는 새누리당의 현실은 참담하고,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무엇보다 비대위와 혁신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일 열린 중진연석회의에서 친박계가 드러낸 상황 인식과 해법은 국민의 기대나 요구 수준과 크게 동떨어졌다. 우선 친박계 중진이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의 분리를 요구하면서 언급한 비대위원장 후보는 혁신을 하지 말자는 뜻과 같다. 친박계 이해를 대변할 ‘핫바지 비대위원장’을 앉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친박계 중진은 전당대회까지만 당을 관리할 비대위 체제로 가고 혁신은 새 지도부에 맡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당 내외의 혁신 요구를 피하면서 당권을 장악해 혁신 시늉만 내겠다는 얄팍한 수가 그대로 읽힌다. 당의 위기는 보이지 않고 계파 이익에 집착하는 친박계 중진의 인식은 계파 혁파가 당 혁신의 요체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물론 비대위ㆍ혁신위의 통합과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분리를 고민할 만한 이유는 있다. 친박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당 체질 개선과 여소야대 3당 체제 운영 등 대내외적 당면 현안에 대한 효율적 대응 측면에서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 “내 편이 없다”고 토로했던 정 원내대표의 푸념에 비추어 그의 어깨에 얹힌 짐도 많다. 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분리와 관련해 중진연석회의에서 “내가 비대위원장을 못할 이유가 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황을 헤쳐 나갈 본인의 의지와 역량을 고려해 현명하게 판단할 일이다.
다만 중진연석회의에서 나온 방안과 관련해 단지 계파 갈등 봉합이나 혁신 시늉만 내기 위한 방향 전환이라면 국민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도 혁신에 대한 의지와 원칙의 훼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 원내대표는 중진연석회의로부터 결정 일임을 받은 뒤 “혁신 비대위가 됐든 뭐가 됐든 혁신과 쇄신 노력을 어떤 식으로 국민에게 보여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혁신 의지는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인선에서 우선 가늠될 것인데, 어정쩡한 계파 안배나 균형으로는 새누리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