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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폭력성과 상처, 시적으로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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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폭력성과 상처, 시적으로 그려내다

입력
2016.05.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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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사진 김병관
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사진 김병관

한강 작가는 1970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한승원씨가 아버지다. 1980년 서울로 이사한 그는 나중에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접하고 최근작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 어린 시절 광주의 고향집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보다는 책과 가깝게 지냈다. 집에는 아버지가 보는 책들이 쌓여 있었고 한강은 그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책상에 앉지 못해 책을 쌓아 그 위에서 글을 쓰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은 절대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읽기에서 쓰기로 태세를 전환했다.

199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한강은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 6권, 소설집 3권, 시집 1권을 발표했으며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함께 부녀가 나란히 수상한 최초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서울예술대에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일관되게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다. 1998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는 한낮에 도심을 알몸으로 달음박질하는 여자 의선과 그녀를 찾아 강원도 오지를 헤매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인간의 광기 안에서 개인과 시대의 상처를 길어 올리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본류라 평가 받는다.

이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화 돼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 2000),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의 탈 속에 숨은 삶의 생채기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2002) 등을 거치며 특유의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을 확립했다.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처음 게재된 중편소설로, 지금까지 보여준 주제의식과 식물에 대한 상상력, 시적 문체의 완결편이라 불린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장편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상처에 질문을 던져온 작가는 2014년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소년이 온다’를 통해 작품 활동의 전기를 맞았다. 기존의 광주를 다룬 소설들이 르포의 형식을 빌어온 것과 달리 작가는 사망자들에 빙의하는 방식으로 광주를 기록했다. 2015년 한국일보문학상 본심후보작에 선정됐을 당시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한국형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시도”라며 “5ㆍ18은 그 진상이 너무 압도적이라 주로 사실을 서술하는 데 치중된 데 반해, 이 소설은 이미 죽어버려 말할 수 없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부활시킨 드문 시도이자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라고 평했다.

국내에서도 5만부나 팔리며 좋은 반응을 얻은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1월 영국에서 출간(영문명 ‘Human Acts’)되며 ‘채식주의자’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2월 한강의 인터뷰를 게재하며 ‘국제적으로 호평 받는 남한 작가, 폭력적인 과거 역사와 맞서다’라는 제목을 달아 ‘소년이 온다’를 집중 소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비중 있게 리뷰를 실어, 향후 외국에서 ‘채식주의자’와 함께 작가의 대표작이 될 공산이 크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인간은 아우슈비츠 대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기도 하는 존재”라며 자신의 소설을 “(인간에 대한 정답이 아닌) 긴 질문으로 읽어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했다.

한강 작가의 신작 ‘흰’은 6월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나온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던 아기와 그 언니의 장례식에 관한 내용으로, 시와 소설 사이의 경계적 글쓰기를 시도했다. 작가는 출간에 맞춰 성북동에서 관련 전시도 열 예정이다. 내년에는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 포함된 연작 장편이 출간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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