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QM3’와 한국지엠(GM)의 ‘쉐보레 임팔라’는 국내 완성차 업체가 해외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차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QM3는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이기도 하다.
수입차의 초창기 시절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기아산업이 1989년 10월부터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수입 판매한 포드자동차의 ‘머큐리 세이블’이 대표적이다. 세이블 가격은 3,000㏄급 수입차로는 파격적인 2,990만원. 당시 현대자동차 그랜저 3.0이 2,890만원이었다.
세이블은 마땅한 대형차가 없었던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역할을 했다. 기아는 머큐리 엠블럼과 함께 차의 양 옆과 트렁크 중앙에 굴뚝 형상의 기아 엠블럼을 같이 붙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자리에도 별도의 라이트 바를 장착해 마치 헤드램프가 일자형으로 좌우로 이어진 듯한 모습이 세이블의 특징이었다. 번호키를 적용해 열쇠가 없어도 잠긴 문을 열 수 있었고, 에어백이 내장된 핸들과 디지털 계기판 등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모습이었다.
세이블 판매가 시작되면서 수입차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 세이블은 1989년 3개월 동안 493대가 팔렸다. 이듬해에는 1,579대가 판매돼 전체 수입차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수입차 판매량은 1987년 11대, 1988년 318대에 불과했지만 세이블 판매가 시작된 1989년에는 1,414대를 기록하며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수입차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외제차’로 부르며 호화 사치풍조의 대표적인 예로 지탄을 받았다. 언론은 판매량보다 판매증가율을 강조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켰고, 수입차 구매자는 일반인들의 따가운 시선과 세무조사를 각오해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세이블은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에, 전국 기아차 정비망에서 수리서비스를 편하게 받을 수 있는 강점 등으로 수입차 최고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세이블은 1996년 판매가 중단됐고, 이후 기아에서는 플래그십 세단 포텐샤가 등장했다.
세이블이 잘 팔리던 시절에도 국내 업체가 외국산 차를 수입해 판다는 비난은 그리 크지 않았다. ‘수출을 위한 수입’이라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기아가 세이블을 수입ㆍ판매했던 것은 수입차 판매를 통한 수익보다는 포드와의 협력 강화로 미국에서의 판매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컸다. 당시 기아는 포드의 판매망을 통해 프라이드를 ‘포드 페스티바’라는 이름으로 연간 10만대 가량 미국에 수출했다. 때문에 한국에서도 자신들의 차를 팔아달라는 포드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포드는 1986년 기아에 10% 자본참여를 했고, 합작으로 할부금융사를 설립하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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