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파문의 와중에 탈취제와 방향제, 다림질 보조제(補助劑)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생활 화학용품에도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인 유독물질이나 호흡 곤란 원인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던졌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시판 중인 다림질 보조제 16종 중 5종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검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부가 지정한 유독물질이 탈취제와 방향제 원료로 사용됐다. 여러 화합물을 조합해 인공향을 내는 방향제의 경우 성조숙증이나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하는 프탈레이트라는 화학첨가제가 쓰였다. 어떤 제품에서 또 다른 독성물질이 발견될지 국민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별 걱정 없이 써온 곰팡이 제거제, 전자 모기향, 손 소독제, 물 티슈, 유리 세정제, 식물 잎 광택제, 에어컨 세정제, 에어컨 항균필터 등의 안전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환경부는 뒤늦게 살균ㆍ항균 기능의 살(殺)생물제(바이오사이드) 제품을 전수조사하고 허가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과 같은 미허가 독성물질을 국민이 마구 사용하도록 방치해 온 셈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500여 종의 살생물제를 사용금지 대상으로 지정해 놓았지만, 우리는 26종만이 금지 물질이다.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 화학용품을 쓸 수 있도록 종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은 물론 일반 공산품까지 포함한 일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각종 화학용품에 쓰인 원료의 신속한 위해성 평가를 거쳐 유해 제품은 퇴출시켜야 한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제품정보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함은 물론이다. 생활 화학용품은 화장품과 달리 ‘전성분 표시제’에 해당되지 않아 성분 표기가 돼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성분 표기 의무화도 요구된다.
정부의 뒷북 대책이 그나마 실효성을 가지려면 화학물질 관리 체계 일원화가 급선무다. 지금은 공산품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생활용품은 환경부, 의약외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나뉘어 있다. 에어컨 항균필터는 전기용품으로 분류돼 산업부 관할이지만, 원료로 쓰인 화학물질에 치명적 독성이 있다면 판단을 바꾸어야 한다. 화학물질의 생산ㆍ관리ㆍ유통ㆍ판매ㆍ폐기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하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