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뉴욕에서 일하는 요리사나 요리에 관심 있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해보았을 브로드웨이 팬핸들러 주방용품점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40년 동안 맨해튼에서 이 상점을 운영해 온 72세의 노만 콘블루스는 최근 비즈니스 매매가 성사되지 않고 물려받을 사람이 없자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은퇴를 결정한 것이다.
이 상점은 요리사들과 요리에 취미가 있는 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들러봤다가, 또는 단골인 지인을 따라 왔다가 단골이 되는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주방용 칼에 일가견이 있는 콘블루스가 상점 뒷편에 있는 식도 코너에서 고객에게 설명해 주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기도 했고, 부엌에서 쓰이는 모든 식기와 도구를 갖춘듯한 다양함에다가 친절한 직원의 도움이 더해져 필요한 것이 없더라도 기분 좋게 자꾸 찾아오게 되는 곳이었다.
브로드웨이 팬핸들러의 폐점 소식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질 정도로 이 곳은 뉴요커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처음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얼마 안되어 직장 동료를 따라갔다가 단골이 된 뒤 브로드웨이 팬핸들러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자잘한 유리컵부터 큰 마음 먹고 세일기간 중에 구매한 무쇠냄비 등 여러 용품을 샀지만, 정작 지금까지 추억으로 남는 건 그것들을 고르느라 설레는 마음으로 거기서 보낸 시간들이기도 하다.
요리를 하는 이라면 주방 용품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지사다. 몇 군데 더 꼽아보자면 레스토랑에서 갓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동료들이 가장 먼저 알려준 곳인 제이비 프린스가 있다. 이곳은 맨해튼 한인 타운에서 가까운 오피스 빌딩 11층에 자리하고 빌딩 외관에 별다른 표시가 없다. 그렇지만 뉴욕에서 일하는 요리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다. 사실 처음 갔을 때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 휑하게 보이기까지 한 쇼룸이 살짝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찬찬히 둘러보면 갖가지 용도의 스푼, 칼 등 레스토랑 요리사들의 필수품부터 요리 전반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최신 요리책과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구들을 구비하고 있고, 갈 때마다 새로운 도구를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 고객은 요리사지만 요리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베이킹 도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쓰여지는 각종 기기 등 볼거리가 많은 상점이다.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의 제이바스는 주민들이 아끼는 동네 마트의 캐주얼한 분위기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1934년에 훈제 생선과 직접 로스팅한 커피 등을 파는 식료품 상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3대째 제이바 가족이 운영하며 거의 한 블록을 차지할 정도로 확장한 마트이다. 어느 때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생동감이 넘치고 나 자신도 그 북적함에 휩싸이고 만다.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치즈는 다 모아놓은 듯한 치즈 코너가 날 반기고, 달콤한 페이스트리 코너, 지금도 초기의 전통을 지켜오는 훈제 생선 코너, 로스팅 정도까지 다양한 커피 코너까지 눈 가는 대로 둘러보다 보면 2층이 있다는 사실 조차 깜빡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2층은 아기자기한 주방 용품들로 가득 찬 또 다른 신세계. 맨해튼 관광지역에서 좀 떨어진 뉴요커의 생활 터전인 이 동네의 주민 취향을 반영한 아이들 생일파티 용품, 식료품 선물 포장 용지부터 다양한 커피메이커까지 일반 가정 부엌에서 유용한 도구와 기기들이 한가득이다. 대형 마트의 사이즈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 마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주민들의 취향과 니즈를 고려한 물건 하나하나에서 엿보인다.
치열한 경쟁과 높은 월세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뉴욕에서 자리잡아온 상점들이 문을 닫으면 내 이웃이 멀리 이사간 듯 마음 한 켠이 휑해진다. 요리사 선배와 동료들이 알려준 곳들, 뉴욕 토박이 지인들이 귀띔해준 상점들, 또는 우연찮게 지나치다 어디에 끌린 듯 들어가 단골이 되어버린 동네 가게들은 그 자체로 세계 각국 음식의 중심지라고 일컬어지는 맨해튼에서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더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김신정 반찬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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