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약진했다. 창당한지 2개월 만에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눌렀고 지역구 25곳을 포함해 총 38개 의석을 확보해 제3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잊혀져 가던 ‘안철수 현상’이 두 거대정당의 공천을 둘러싼 기득권 싸움으로 다시 소생했다.
새누리당의 ‘옥새파동’과 더민주당의 ‘셀프공천 논란’ 등으로 갈 곳 없던 중도 부동층의 표가 국민의당으로 향한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이 계파 싸움만 일삼는 구태정치에 대한 심판이 새정치를 지향하는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로 이동했다. ‘양당 독점 정치구도 타파’라는 안 대표의 새정치 비전이 어느 정도 먹혀 든 셈이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안 대표에게 ‘선물’이 아닌 매우 어려운 역사적 과제를 남겼다.
우선, 새정치 이미지가 앞으로 끊임없이 안 대표를 괴롭힐 것이다. 낡은 정치의 구태를 배격하고 도덕적 우월성을 견지하는 새정치는 말처럼 쉽지 않다. 내부 반발과 현실 안주의 유혹 때문이다. 안 대표가 표방해온 새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존 정당들과는 다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당내 당선자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 조사에 대해 ‘제식구 감싸기’ 구태를 보여선 안 된다. 한 국회의장을 비롯한 원구성을 둘러싼 정당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국회 공전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강제해야 한다. 당내·외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새정치를 위해 반드시 도덕적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 다른 과제로는 당의 이념적·정책적 정체성 확립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쟁점에 따라 연대세력이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공당으로서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안 대표의 그 동안 행보에서 유추하자면 정치·사회적으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경제적으로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정책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아직도 국민의당의 정체성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번 총선 공약에서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당내 개혁적 보수 세력과 합리적 진보 세력을 통합하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다.
당 조직체계의 완비도 서둘러야 한다. 당헌에 따라 8월 초 기한인 전당대회를 현실적 제약을 핑계로 연기하려는 움직임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정치와 다를 바 없다. 지도부 선출을 위한 조직체계가 미비하다는 명분은 국민의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표심을 짓밟는 것이다. 당권과 대권을 대선 1년 전에 분리한 것은 특정인의 당 지배를 막고 공정한 경선을 위함이다. 안 대표가 당권 욕심을 버려야 당이 살 수 있다. 정치적 상황 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른 당헌 무시는 당내 분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낡은 정치와 다른 새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선택은 의외로 명료하다.
최근 당 내부에서 불거진 연립정부 논란은 민심을 거꾸로 읽는 행태이다. 안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지 수년이 흘렀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된 새정치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정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은 ‘대권 플랜’이 아닌 ‘낡은 정치 타파’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일관된 정책도 공약도 없는, 정체성조차도 모호한 2개월 된 신생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이유는 새누리당의 보수 세력 견제가 아닌, 양당독점의 낡은 정치 타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당이 성공적인 제3당으로 정착해 양당제를 허물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큰 틀에서는 낡은 정치와 지역주의 타파라는 시대정신을 잘 제시했다. 그러나 각론에서 정당구조 개혁, 계파정치 타파, 기득권 내려놓기, 일하는 국회 정립 등을 어떻게 실현할지 구체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 대안 마련과 실행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연대가 점차 강해질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ㆍ미래정치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