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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다한 1987년 체제, 정치 혐오 부추겨”

입력
2016.04.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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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가 구성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해지고 국회의원들의 자율성이 그만큼 커져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가 구성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해지고 국회의원들의 자율성이 그만큼 커져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1985년 12대 총선에서 첫 선거권을 행사했던 기자 또래에게 당시 ‘유인태’라는 이름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거를 받았던 ‘운동권의 전설’이었다. 그런 그가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무대에 등장한다. 3년 만에 다시 총선을 치르게 된 건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피와 눈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영삼ㆍ김대중 소위 양 김의 분열로 인해 정권을 신군부 출신들이 만든 민주정의당에게 헌납했다. 대선 직후 치러진 13대 총선은 대구 경북 노태우, 부산 경남 김영삼, 호남 김대중, 충청 김종필이라는 각 지역 맹주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대 최악의 지역분할 구도로 치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3김과 민정당의 지역할거를 비판하는 정치인과 재야 인사들이 힘을 합쳐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했고 유인태는 노원갑에 출마해 5위로 낙선했다. 이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은 한 명 당선에 그쳤고, 1991년 해산한다. 그 이후 유인태는 선거 때마다 3김으로 대표되는 지역맹주 정치에 반대하는 길을 꿋꿋이 걸었다. 그가 재보궐 선거를 포함 7번 출마해 3번 당선에 그친 이유다.

20대 총선에서도 지역 맹주가 일방적으로 공천권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실망한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탈락 후 불출마를 선언한 유인태 의원을 지난달 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건 이런 맥락에서다.

사형선고 받은 운동권의 전설

13대 총선으로 정치 데뷔 후

지역분할ㆍ맹주정치 반대 소신

_13대 총선에 한겨레민주당으로 출마해 낙선하고 14, 17, 19대로 띄엄띄엄 3선을 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당의 이름이 달라졌다. 이번 20대에 출마했더라도 또 당 이름이 바뀐 상황이다.

“내가 출마할 때마다 당이 바뀐 건 ‘3김’으로 대표되는 지역분할, 맹주 정치를 반대하는 소신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13대 총선 직전 대선 당시 양김이 분열해서 민정당에게 정권을 내줬지 않은가. 당시 재야는 백기완 파, 단일화 파, 김대중 비판적 지지파 셋으로 분열됐다. 김대중 비판적 지지파는 후에 평민당으로 흡수됐다. 단일화를 요구했던 사람 중에는 YS에 조금 우호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건 아니었다. 단일화 추진 현역 의원들, 서명파라고 해서 박찬종 조순형 홍사덕 이철 장기욱 다섯 사람이 주축이 돼 총선에선 야권 통합을 이뤄서 5공청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도권이 승부처로 떠오르자, 양김은 한겨레민주당과 서명파를 포섭하느라 공을 들였다. 양측 모두 입당하면 서울 공천권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린 명분을 지키려 거부했다. 그때 양김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면 13대부터 무난히 6선을 했겠지.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1995년 여름 DJ가 새정치국민회의로 분당할 때도 그 쪽으로 가면 선거가 수월하다는 걸 알았지만, 명분이 없어 거부했다. 당시 노무현 최고위원이 ‘당신이 끝까지 남겠다고 약속해주면, 김원기 최고의원이 국민회의로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기에 약속해줬다. 결국 이부영과 제정구 정도만 당선되고,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_대부분 대통령이 당선 전후에 새로운 당을 만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든 건 우발적이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내 신주류와 구주류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2003년 9월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신주류 이미연 의원 머리채를 구주류 인사가 잡아당긴 사건이 분당사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연 의원 머리채 사건’은 이미 신당 창당파와 반대파의 반목이 깊은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그의 설명을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마 17대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 자신이 추구했던 3김과 지역맹주 척결 소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말로 여겨져 따져 묻지 않았다.

_마지막 의사진행 발언으로 돌아가 “이젠 못 돌아오지만”이라고 말한 다음 정치혐오 풍토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직선제 쟁취 후 점점 더 정치혐오가 심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87년부터 5년 단임제를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보니, 사회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적 문제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본다. 대통령 중심제로 5년 단임제로 하니까, 대통령이 자기 고집대로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신대로 정치할 수 있는 기간도 짧다. 공천권을 쥐고 있을 때에나 여당에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의원 임기가 대통령보다 길어지는 순간 레임덕에 빠진다. 국회 역시 소선거구제와 지역구의원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유권자의 투표가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득표율은 약 43%였다. 근데 의석은 과반을 차지했다. 독일은 정당연합을 통해 과반 이상의 득표를 했음에도 야당과 타협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 국회는 43% 득표로 과반의석을 차지하면 자기 뜻대로 하려 한다. 57%의 민의가 전혀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 지지해준 유권자가 좀 더 많다고 해도 야당과 토론을 통해 타협하라고 만든 게 국회인데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물론 야당도 잘못이 적지 않다. 36%를 득표한 정도면 여당에 양보할 건 양보하고 저쪽 주장이 더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야당에게도 그런 태도가 부족했던 건 인정한다. 87년 민주화 되고 나서 지금이 8번째 총선이다. 총선 때마다 여야는 모두 참신한 인사 영입, 물갈이를 외쳐왔으나, 달라진 게 무언가. 회기마다 참신한 사람이 들어왔으니 지금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갈수록 정치혐오가 심해지는 건, 사람 문제가 아니라 제도 탓이다.”

대통령 자기 고집대로 국정운영

국회는 유권자 투표 반영 못해

극단세력 목청 과도하게 키우고

중도성향 인물 제 목소리 못내

타협의 정치 불가능한 현 체제

광역비례대표제ㆍ석패율제 도입

유럽식 4당 구도 나오게 해야

_지역구 위주의 소선구제가 우리나라 정치혐오 현상의 근본적 문제라고 보는 것인가.

“현행 소선거구제의 또 다른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이쪽 저쪽이 죽기살기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각 정당 내 중도성향의 인물이 제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는 합리적 보수주의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중도적 생각 자유롭게 말하거나 정책에 반영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 그쪽에서 ‘저놈은 우리의 배신자다’라고 낙인 찍으면 정말 곤란해진다. 특히 극우적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위력이 더 커졌다. 사정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더 급진적이고 원칙주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소선구제가 극단적 세력의 목소리를 과도하게 키운다, 그래서 다양해지는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행위를 하게 되는 거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대표들이 국회에 들어와야 정책에 대한 여야간 타협도 활발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이 선거제도에선 여당이 맘에 안 들어도 영남 출신은 여당에 갈 수밖에 없다. 다당제가 가능한 유럽식 모델로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_뜻대로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중앙선거관위원회가 지난해 2월 내놓은 ‘정치 관계법 개정안’대로 하면 된다. 지역구의원을 200명 내외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100명으로 늘리며, 전국을 5개 광역으로 구분해 전국구 대신 광역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출마할 수 있는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 국회의원을 300명이라고 가정하고 어떤 정당이 전국득표율이 10%인데 지역구에서 한석만 당선됐다면, 득표율 10%를 반영해 29석을 비례대표에서 채워줘서 30석을 그 정당에 주는 거다. 그렇게 되면 당이 여러 개 생기겠지. 지금 선거제도에선 뛰쳐나가서 신당을 하고 싶어도 생존이 안 되니까 남아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선거제도라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나가서 국회에 진출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에도 국민의당 노선과 가깝지만 선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국회가 만든 목적에 부합하려면 국민의 여러 다양한 세력들의 대표들이 그 비율만큼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닐까. 중도보수정당과 중도진보정당이 하나씩 있고 조금 더 급진적인 진보정당, 급진적인 우파 정당도 하나 있어야 한다. 유럽이 대개 이런 4개 당 체제를 하고 있다. 어느 한 당이 과반이 안 되면, 독일 같은 데는 중도보수와 중도진보 당이 연정하며 정국 안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타협의 정치가 이뤄지니 독일 정치 제도를 세계가 부러워하지 않나. 이 선거 제도 하에서 국회는 결국 타협의 정치를 이뤄내지 못한다.”

_중앙선관위 안은 왜 흐지부지됐나

“새누리당이 현 제도의 가장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 않나. 영남이 호남보다 37석이 지역구가 더 많다. 67대 30 지금은 줄어서 65대 28. 그 쪽에서 야당은 두세 석밖에 가져올 수 없다. 현 소선거구제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게 새누리당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선거구획정이 그래서 늦어진 거다.”

_이번 선거구 획정은 유의원의 목표와 정반대로 간 것 같다.

“이전보다 더 후퇴했지. 비례대표가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_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선거구 개혁에 소극적이라면 어떻게 현 제도가 바뀌겠는가.

“개헌과 동시에 이뤄져야 할 거다. 그거 아니곤 대통령 중심 소선거구제 하에선 기득권을 갖고 있는 영남 기반 정당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개헌은 이명박 대통령도 시도하려고 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개헌 한 번 해보자고 발언한 적이 있다. 새누리당 안에 개헌 지지하는 숫자가 반대하는 쪽보다 많다. 대통령제 운영해 보니까 안 되겠다는 걸 느낀 거다. 게다가 20대 국회가 구성되면 우리 정치사의 마지막 지역맹주가 될 박근혜 대통령의 장악력도 약해지고, 국회의원들의 자율성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그때 개헌과 더불어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처럼 정치혐오가 심한 환경에서 국회중심의 의원내각제 개헌은 반대가 심하겠지만, 오스트리아처럼 분권형 체제는 수용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 통일 분야나 교육 같이 장기적인 정책에 대한 권한을 주고, 나머지는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체제가 어떨까.”

_유의원이 심혈을 기울이던 사형폐지 법은 어떻게 됐나.

“의원 과반이 넘는 의원이 서명한 법안이 법사위에 묶여 있다. 법사위는 표결이 아니라 합의처리가 관행이라 소수가 반대해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 법사위원장에게 부결이라도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부결이 되면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표결할 수 있으니까. 선거 끝나고 4월 마지막 회기 때 통과시킬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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