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그 후, 소녀의 눈물은 왜 마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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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그 후, 소녀의 눈물은 왜 마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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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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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합의한 지 100여 일이 훌쩍 지났지만,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양국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합의했지만 합의 이행은 더디고 피해자 일부는 헌법소원까지 낸 상태다. 24년을 끌어온 지난한 협상이 타결됐음에도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6일 서울 중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2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 뉴스1

갈등의 불씨 남긴 '한일 위안부 합의'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통감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4억원)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 된 1991년 이후 24년 만이다. (▶기사보기)

합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다. (정치적·외교적 타결을 제안하는 현실론과 일본의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원칙론이 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한 단계 나아간 협상 결과를 도출했다는 게 정부의 자평이지만, 명확한 '법적 책임'은 얻지 못했다는 게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사죄’를 언급하는 등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예산을 투입했다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이 명시되지 않은 모호한 표현으로 배상 의무를 회피한 점과 소녀상 이전 문제를 공론화할 소지가 있는 등 국민적 기대에 못 미치는 합의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타협을 위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과 같은 민감한 표현을 사용하도록 양보한 점도 '찜찜한 부분'으로 지적됐다. (▶기사보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모습.한국일보 자료사진

설익은 협상이 낳은 '일본의 망발'

문제는 사과 이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해자가 "내가 과거엔 잘못했다"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다. 며칠 뒤 가해자가 "사실 나는 잘못이 없다"거나 "내가 잘못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면 피해자는 이 사과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합의 이후 일본의 주요 인사들의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해 피해자들의분노를 샀다. 지난 1월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자민당 의원은 “위안부는 직업 매춘부”라고 망언을 했다가 논란이 일자 발언을 취소했다. 얼마 뒤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으며,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는 이어졌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2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열린 심의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성노예라는 표현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의 새 교과서도 위안부 본질을 흐려 표현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위안부를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로 기술했는데, 일본군에 연행됐다는 사실을 빼 위안부 문제의 책임소재를 흐리는 식이다. (▶ 칼럼보기)

피해 할머니들은 왜 ‘합의무효’ 주장하나

일본이 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행태를 이어가는 가운데,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등은 줄곧 "합의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의견 수렴 부족 ▲불가역적'이란 표현으로 추가 해결 여지 일축 ▲'위안부 소녀상' 이전 내용 언급 ▲일본의 법적 책임 불명확하다는 비판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법적 배상’이다. 법률상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해 생긴 손해에 대해 지불하는 것이고, 보상은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으면서 단순히 손실만 야기했을 때 주는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묻는 배상이 아닌 '상처치유금'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10억엔을 한국 정부 주도의 재단에 지원하기로 했다. 법적 배상이 아닌 위로금 지원은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가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게 피해 할머니들의 주장이다. (▶기사보기)

피해 할머니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달 27일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 44명 중 29명과 사망한 할머니 8명의 유족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냈다. 정부 차원의 ‘해결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향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2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가수 김장훈이 뉴욕 도쿄 시드니 등 세계 18개국의 주요 도시 번화가에 붙인 위안부 광고 포스터. 이 포스터는 빌리 브란트 독일 전 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에서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이 담겼다.

일본의 사과는 무엇이 빠졌나

일본의 사과는 종종 독일과 비교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을 일으켰던 전범 국가 독일의 반성은 정치지도자의 진심 어린 사죄에서 출발했다. 1970년 12월 7일,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헌화 도중 무릎을 꿇었다. 이를 가리켜 세계는 "무릎을 꿇은 건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했다. 독일의 사죄는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끔찍한 범죄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 교육에 각별히 힘을 쏟고, 주요 도시엔 기념관을 설치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을 요구해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000회를 맞은 2011년 12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중심이 된 시민 모금으로 설치됐다. 일본은 왜 소녀상 철거에 집착할까.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지까지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소녀상이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줘 일본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실추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사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정상회담장에서 아베 총리와 마주 앉은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과거사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결국 일본이 10억엔을 지원하기로 한 정부의 재단 설립이 4월 총선 이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피해 할머니들의 외로운 싸움에 국내외에서 지지와 관심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들과 시민이 나섰고, 소녀상의 곁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는 동판도 설치된 상태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 조사 기준 위안부 생존자 44명의 평균연령은 89.4세다. 지난해만 9명, 올해에만 2명의 생존자가 세상을 떠났다.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힘겨운 시간과의 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칼럼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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