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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PD들의 이유있는 사표 행렬

입력
2016.04.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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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사표를 제출한 김유곤(왼쪽) 전성호 MBC PD. MBC 제공
지난 5일 사표를 제출한 김유곤(왼쪽) 전성호 MBC PD. MBC 제공

지난 5일 밤 MBC 예능국의 간판 김유곤ㆍ전성호 PD가 동시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tvN 등의 채널을 보유한 CJ E&M로의 이직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빠, 어디가!’, ‘느낌표’,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우리 결혼했어요’ 등 MBC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도맡아 연출했던 PD들의 이탈 소식에 방송가도 술렁였습니다.

두 PD의 퇴사 소식을 들으며 불현듯이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지난해 4월 MBC ‘무한도전-식스맨 프로젝트’ 편에 출연한 김 PD가 방송국 내 ‘패션 테러리스트’로 꼽히자 ‘무한도전’의 멤버 광희와 정형돈이 그의 패션을 세련된 스타일로 바꿔준 모습입니다. 노동조합에서 줬다는 축 늘어진 검은색 점퍼와 청바지 차림이던 김 PD는 “홍대나 가로수길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이 쳐다볼 정도로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해 폭소를 유발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김 PD처럼 자사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민 PD도 드물 겁니다. 유재석이 “방송 욕심이 과하다”며 그에게 농담을 던질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MBC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수룩해 보이는 얼굴로 예능인 못지 않은 예능감을 선보였던 김 PD를 통해 시청자들은 MBC와 MBC 예능 프로그램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정작 MBC 구성원들은 이들의 퇴사를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PD들의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성과주의를 주입하는 조직문화, 인재를 양성하고 보호하기 보다 흑자를 우선하는 경영진의 생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MBC 직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십 수년 간 버텼던 베테랑 인력들도 떠날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두 PD의 사직 소식에 MBC의 한 관계자는 “수년 째 계속되는 인력 이탈에 남아있는 구성원들의 자부심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며 “종합편성채널(종편)이나 다른 케이블채널에서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지상파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던 선후배들이 이제는 버틸 동기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4월 ‘쌀집아저씨’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김영희 PD가 중국 진출을 이유로 MBC를 떠난 데 이어 5월엔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 등을 연출한 이병혁, 김남호 PD가 잇달아 MBC를 떠났습니다. 11월에는 손창우 PD가 tvN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지난 2월 사표를 낸 신정수, 강궁, 문경태 PD까지 더하면 9명의 MBC 예능 PD들이 지난 1년 사이에만 새로운 둥지를 찾아갔습니다.

MBC 구성원들은 인력 이탈에 대한 회사 측의 냉랭한 대응 때문에 정든 동료들을 떠나 보낸다는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핵심 인력들의 줄 사표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는 못할지언정 회사가 구성원들을 더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다는 겁니다.

입사한 지 15년째인 MBC 직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종편이나 케이블채널도 잘 나가니(돈을 많이 버니) 사람도 빼가는 거다. 떠날 사람은 떠난다. 무한 경쟁 체제에 MBC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압박해 회사 일에 토를 달지 못하게 하거나 직종폐지로 PD나 기자들도 사업국으로 보내 돈 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거죠.”

실제로 MBC를 떠난 뒤 김영희 PD의 중국진출 계획에 힘을 보탠 신정수 PD의 경우 2012년 MBC파업에 참가한 이후 프로그램 제작 일선에서 배제돼 사업국을 전전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물론 지상파 스타 PD들의 이적이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기세등등한 종편과 케이블채널에 밀려 예능명가 MBC도 사실상 옛말이 돼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더 나은 조건으로 평가하는 회사로 적을 옮기는 건 프로의 세계에서 당연한 이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독 MBC 예능국이라는 특정한 조직에서만 최근 사퇴행렬이 이어지는 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능력은 있지만 능력을 발휘할 여건이 안 된다는” MBC 예능국 관계자의 하소연을 지금이라도 경영진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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