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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알파고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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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알파고 쇼크

입력
2016.03.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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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한 주였다. 인공지능이 바둑 최고수를 이기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서양의 이양선과 새로운 문물에 깜짝 놀랐던 조선 말의 우리 모습이 이랬을까 싶다. 알파고는 예상보다 너무 강했다. 아니, 우리가 처음부터 예상을 잘못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제2의 쇄국, 즉 ‘디지털 쇄국’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한국에 상륙하는 데에는 2년이 지체되었다. 업계 종사자들은 천지가 개벽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국내 유명 사회관계망 서비스 업체는 수시로 정부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게임 산업은 마약소굴 취급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게임광이었던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나이 마흔인 지금 세계적인 인공지능 회사가 아니라 동네 치킨집을 힘겹게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부동산 재개발과 4대강 삽질뿐이었다.

알파고는 인류 최고수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겼다. 일부 착점은 바둑 최고수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바둑의 정석을 다시 쓰거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알파고 개발자들도 마찬가지다. 바둑을 마친 인류 최고수에겐 함께 복기할 상대가 없었다. 인간은 모르지만 그 피조물인 기계는 알고 있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상 새로운 형태의 미지에 우리가 노출된 셈이다. 알려진 미지(known unknowns)와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를 말했던 미국의 전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표현을 빌려 쓰자면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공지능만 아는) 사실(unknown knowns)”, 즉 미지(未知)한 기지(旣知)가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부랴부랴 인공지능시대 마스터플랜 수립에 나섰다. 이 분야를 또 무슨 ‘전략산업’으로 키울 요량인가보다. 정작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인공지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모든 문제를 산업이나 돈벌이의 문제로만 치환해 온 정부의 오랜 패착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1957년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를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미 항공우주국도 그렇게 창설되었다. 뿐더러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학문의 교육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파고 쇼크’를 극복하는 길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일수록 플랫폼으로서의 기초학문이 더욱 중요하다. 알려진 지식(known knowns)의 단순 전달만으로는 미지한 기지를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알파고 쇼크’는 우리 하기에 따라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이런 성찰의 계기가 생긴 것도 이세돌이라는 걸출한 인류 대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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