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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저당 해도 ‘괸당’이 최고”

입력
2016.03.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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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 중심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

연고주의 선거판 등 부작용도 많아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같은 존재

“집이 어디꽈(어느 곳이에요)”. 제주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말 중 하나다. 여기서 집은 현재 살고 있는 집보다는 고향이 어디냐는 말을 뜻한다. 이어 고향이 어디라고 답하면 상대편은 그 곳 출신이거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되묻는다.

고향에 이어 다음 질문은 “학교는 어디 나와수꽈(나오셨나요)”이다. 대학교보다는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중학교, 초등학교 등 순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제주 토박이들은 고향과 학교 정도만 말해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형 아니면 아시(동생의 제주어)’가 되거나 ‘삼춘 혹은 조카’가 된다.

제주는 말 그대로 ‘한 다리’만 건너면 거의 알 정도로 좁은 지역사회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다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이 많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의 ‘괸당’문화가 존재한다.

괸당은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로, 권당(眷黨)에서 비롯된 말이다. 넓은 의미로 이웃도 포함된다. 예로부터 농사도 짓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괸당끼리 모여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건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 오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공동체문화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에서는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수 십명의 괸당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면서 서로의 집을 찾아가 명절제를 지낸다. 벌초도 자신의 직계 조상의 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정해진 날에 모든 괸당들이 모여 친척 조상들의 묘까지 구분 없이 돌본다. 결혼식이나 장례 때도 괸당들이 모여들어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 준다.

이처럼 제주의 ‘괸당’ 문화엔 순기능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제주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이당 저당 해도 괸당이 최고’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이 우스갯소리가 실제 선거결과에 반영된다는 데 있다. 다른 지역들도 혈연, 학연, 지연을 선거에 활용하지만, 제주는 그 정도의 수준이 심하다. 정당이나 정책보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에게 ‘묻지마’ 식으로 표를 몰아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지난 1995년 민선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7차례의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횟수가 정당 소속 때보다 많았다. 이 때문에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평소에도 종친회, 향우회, 동문회 등을 공을 들여 관리한다. 심지어 ‘싯게집(제삿집을 뜻하는 제주어)’을 잘 찾아가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또 괸당문화는 공직사회는 물론 행정업무, 각종 공사 계약, 채용 등 공사 구분 없이 지역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젊은 세대들 중심으로 괸당문화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고, 제주로 이주하는 외지인들이 늘면서 괸당 중심의 사회 분위기도 변화하고 있다.

결국 괸당문화는 제주사람들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 쓰면 독이 될 뿐이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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