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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필리버스터가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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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필리버스터가 준 선물

입력
2016.03.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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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회에서 10시간 18분 헌정사상 최장시간 기록으로 무제한 토론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포옹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24일 국회에서 10시간 18분 헌정사상 최장시간 기록으로 무제한 토론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포옹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정치는 진실을 도구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진실과 정치는 종종 갈등관계 속에 있으며, 정치의 도구는 ‘진실’이 아닌 ‘조직화된 거짓’인 경우가 더 많다. 정치에서 조직화된 거짓은 국가를 위하여 정당화되는 도구로 쓰인다. 다양한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유포되고, 위기의식이 조작되거나 과장된다. 정치화되고 계산된 거짓을 통해서, 증오해야 할 ‘적’과 손잡아야 할 ‘동지’가 만들어진다. 독재사회로 갈수록 거짓은 진실의 옷을 입고서, 그러한 진실에 대한 저항은 범죄시 된다. 토론과 논쟁을 배제하는 진실이란 결국 조직화된 거짓인 이유이다. 테러방지의 이름으로 다중적 인권탄압은 정당화되고, 그 거짓된 진실을 내세우는 정치집단은 권력을 확장하고, 통치권을 확고히 한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진실이 아닌 조직화된 거짓과 과장에 의하여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세계도처에서 ‘테러방지’ 또는 ‘테러와의 전쟁’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조직화된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 도구가 되는 정치적 현장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직화된 거짓의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그 허구성의 진실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우리에게 정치적 저항을 통하여 정치와 진실이 함께 손 잡고, 진실이 정치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순간의 경험’을 하게 하였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 사는 이들도 동영상과 다양한 웹사이트를 통해서 필리버스터로 나선 국회의원들의 말을 경청(傾聽)하고, 그들의 말을 담은 문서들을 경독(傾讀)하며 밤을 지새웠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국회의원들의 말과 글은, 소위 ‘테러방지법’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개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현 정부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쓰일 것인지를 낱낱이 드러내었다. 또한, 한국 역사에서 권력확장에만 총력을 기울였던 정치집단이 무수한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진실을 조작했는지를 조목조목 상기시켰다. 조직화된 거짓의 허구성과 그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2016 한국에서의 필리버스터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첫째,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깨우침이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다. 피로 물든 5.18 항쟁 이후, 우리는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사회로 만들려는 국가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경험하지 못했다. 밀양과 광화문 그리고 시청으로 상징되는 저항공간이, 국가적 폭력, 통제, 감시, 증오의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국가정치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국가권력에 의하여 지독한 고문을 당했던 국회의원이 자신의 육체적 한계들을 넘어서서, 혼을 다 쏟아 부으며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한다. 조직화된 거짓의 공간을 ‘자유를 향한 저항공간’으로 전이시킨 것이다.

둘째, 개별성의 중요성에 대한 깨우침이다. 민주주의의 근원적인 출발은 개별인들이다. 그 개별인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고학력이든 저학력이든, 빈곤하든 부유하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오직 한 표만을 행사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터전은 바로 이러한 ‘개별성의 원리’에 있다. 모든 개별인들의 자율성, 존엄성, 평등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개별인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 개별인들은 제각기 물음을 묻고, 이의제기하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개별성의 중요성이 바로 민주주의의 인식론적 터전이다.

셋째, 상호연결성의 중요성에 대한 깨우침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정치에서는 정치인과 국민이 상호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인식이 거의 부재했다. 정치인 따로, 국민 따로의 의식 속에 정치가 성숙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 필리버스터 사건은 민주주의 정치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확인하게 해 주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필리버스터를 하는 개별인으로서의 국회의원들은 진정한 정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또한 자신도 한 국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별인-국회의원들과 개별인-국민의 강력한 상호연결성의 끈이 다양한 방식으로 맺어지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국회에서의 말은 동시에 글이다. 필리버스터를 하던 국회의원들의 말들은 이제 길이 남는 역사적 문서가 된다. 정치와 진실이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이 아닐 때, 진실이 이렇게 문서화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조직화된 거짓이 난무하는 정치에서 진실의 말과 증언들이 문서화되는 것은 중요한 ‘정의의 행위’가 된다. 조작된 거짓과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어 문서로 각인함으로써, 왜곡된 역사 국정화로 인한 진실 은폐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보통 평범한 국민이 지니지 못하는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이 개인들이나 집단의 이득과 권력확장이 아니라, 어떻게 공공의 선을 위하여 올바르게 쓰여야 하는지를 이번 필리버스터 사건은 보여주었다.

이 세계에서 살아있음이란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저항은 살아있음의 확인이다. 희망의 근거는 승리의 보장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와 정치를 향하여 씨름하는 그 과정 자체 속에, 바로 희망의 근거가 있다. 이기는 싸움이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할 싸움이기에 싸우고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2016년 필리버스터 사건에서 우리는 이러한 소중한 희망의 경험을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정치인과 국민이, 그리고 정치와 진실이 함께 강하게 연결되어 유대하며 자유를 향한 저항의 춤을 추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비록 ‘순간의 경험’일지라도, 그 경험이 이 ‘헬조선’에서 정의, 자유, 평등이 꽃피우는 새로운 한국정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여잡게 하는 희망의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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