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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무모해서 아름다운 ‘귀향’

입력
2016.02.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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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이 상영 첫 주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와우픽쳐스 제공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다룬 영화 ‘귀향’의 초반 흥행이 심상치 않습니다. 개봉일인 24일에만 15만4,728명이 보았고, 27일엔 29만6,524명이 보며 누적 관객 75만6,6665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만 관객을 모은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을 밀어내고 4일 연속 일일 흥행순위 1위에 오르며 흥행 기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귀향’의 흥행세는 상영 스크린 수와 일일 상영횟수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24일 전국 512개 스크린을 차지했던 ‘귀향’은 27일 769개로 스크린 수를 257개나 늘렸습니다. 상영횟수는 2,130회(24일)에서 3,215회(27일)로 늘어났습니다. 극장들이 돈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흥행 추세라면 상영 첫 주 100만 관객 돌파는 무난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영화계에서는 ‘귀향’이 2014년 다양성영화 바람을 일으켰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1,818명)와 비슷한 흥행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300만 관객 동원은 거뜬하고 500만 관객 고지 점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상영 초반부터 흥행 가능성이 비친다고 하나 ‘귀향’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25억원의 제작비를 모으기까지 조정래 감독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집을 팔아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했는데도 영화를 만들기엔 태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실시해 12억원을 모았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업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렇게 기꺼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피해를 그린 영화가 쉬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악한 투자자들은 알만 하다는 것이지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꼭 영화로 만들어 알리겠다는 조 감독의 의지, 조 감독의 뚝심을 믿고 이익배분과는 무관하게 돈을 선뜻 내놓은 소액 투자자들이 있어 영화의 완성이 가능했습니다.

개봉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장사가 될 영화가 아니어서 투자가 수월하지 않은 영화였으니 선뜻 나설 배급사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영화를 완성하고도 개봉은 기약 없던 ‘귀향’에 손을 내민 영화는 소규모 배급사 와우픽쳐스였습니다. 2014년 설립한 신생 배급사인데 창립작 ‘상의원’(2014)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일군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습니다. ‘연애의 맛’과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몬스터 헌트’ 등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며 회사가 곧 공중 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귀향’의 배급과 마케팅에 필요한 10억원을 투자하면서 배급에 나섰습니다. 영화계에선 당연히 무모한 배급이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와우픽쳐스는 영화계의 예측을 기분 좋게 뒤엎고 첫 흥행작을 빚어내게 됐습니다.

‘귀향’의 흥행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검사외전’의 흥행에 따른 역풍이 ‘귀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지난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했던 ‘검사외전’이 영화 완성도가 그리 뛰어나지 않는데도 전국 극장가를 장악하며 스크린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킨 점이 ‘귀향’에 도움이 됐다는 해석입니다. ‘검사외전’과 같은 상업영화에 밀려 ‘귀향’이 스크린 수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면 어찌하냐는 네티즌의 경계심이 극장들을 자각시켜 ‘귀향’의 상영 초기 스크린 확보에 영향을 줬다는 것입니다.

조정래 감독이 무모하게 시작한 영화 ‘귀향’이 어렵게 투자를 받고 또 어렵게 개봉하기까지의 과정은 영화계에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대형 제작사들과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주판알을 튕기면서 외면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충무로 비주류를 통해 비로서 관객과 만나게 됐습니다. 충무로의 시장 시스템이 지닌 허점을 드러낸 셈이죠. 소수의 용감한 도전이 있었기에 황금만능주의 시스템의 잘못이 그나마 교정됐다 할 수 있습니다. ‘귀향’의 흥행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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