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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는 살 수없다고 하소연... 인간 본질에 눈 뜨면 돌파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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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는 살 수없다고 하소연... 인간 본질에 눈 뜨면 돌파구 있어”

입력
2016.02.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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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를 나흘 앞둔 18일 충북 충주 석종사 선림원에서 만난 혜국 스님(금봉선원장)은 “수좌들이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려면 평생을 수행해도 부족하다”며 “내 자신부터도 평생 수행했지만 과연 중생의 아픔을 얼마나 함께 짊어지고 있는지 흡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충주=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동안거 해제를 나흘 앞둔 18일 충북 충주 석종사 선림원에서 만난 혜국 스님(금봉선원장)은 “수좌들이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려면 평생을 수행해도 부족하다”며 “내 자신부터도 평생 수행했지만 과연 중생의 아픔을 얼마나 함께 짊어지고 있는지 흡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충주=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온 우주가 그대를 왕, 왕비처럼 떠받드는 데 어찌 자살하려 하시는가?”

대한불교 조계종 금봉선원장인 혜국 스님은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나흘 앞둔 18일 오전 충북 충주시 석종사(釋宗寺) 선림원 대중방에서 기자들을 만나 “고통의 감정과 인간의 몸뚱이를 포함해 고정불변인 것은 없으며 우리 삶을 이끄는 힘은 공기, 햇볕, 우주 등 온 우주 자연에서 빌려온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혜국 스님은 한국 불교 선수행을 이끄는 대표 선승이다. 13세이던 1962년 해인사에서 출가해 경봉, 성철, 구산 스님 문하에서 수행했다. 젊은 시절 해인사에서 10만 배 후 오른손 세 손가락을 연비(燃臂ㆍ자비행 실천을 위해 신체를 태우는 수행법)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은 어수선한 세상 정세에 대해 “부처님 말씀에 ‘이 세상은 썩은 일, 더러워진 일이 없다. 더러워진 각자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있다”며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는 대신 더럽혀진 일 없는 세상을 먼저 바꾸려는 것은 전도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젊은 학생들이 저를 찾아와 ‘저희 같은 흙수저는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하곤 합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를 이 세상에 억지로 끌고 온 사람이 있습니까. 끌려왔다면 우리는 노예입니다. 내가 태어난 인생에 내가 주인이라면 경제가, 환경이, 남북관계가 어떻든 우선 좌절하기보다 이겨나가고 볼일 아니냐는 겁니다.”

혜국 스님은 특히 마음을 닦는 대신 물질문명에 너무 많은 것을 바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학, 문명, 물질, 학력은 갈수록 높아지는 데 많은 이들이 내 마음을 닦고 수행할 시간은 찾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며 “마음의 문을 열어 생명의 본질, 인간의 본질에 눈을 뜨는 의식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 넓은 허공에는 아무리 먹물, 똥물을 끼얹어도 묻거나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생명의 본질, 인간의 본질은 허공과 같습니다.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 인생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자기 본질만 분명히 키워나간다면 모든 것이 어렵다는 지금의 상황에도 충분히 돌파구는 있습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을 파고들어 참구하라는 조언은 안거의 정신과도 맞닿아있다. 이번 동안거에는 조계종 전국 사찰에서 2,200여명이 참여했다. 금봉선원에서는 국제변호사였다가 어느 한 쪽의 억울함이 생기는 일을 견딜 수 없어 출가한 스님 등 30여 스님과 100여 재가자가 동안거 중이다.

동안거 해제를 나흘 앞둔 18일 충북 충주 금봉산 자락에 위치한 석종사 금봉선원에서 3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다. 충주=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동안거 해제를 나흘 앞둔 18일 충북 충주 금봉산 자락에 위치한 석종사 금봉선원에서 3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다. 충주=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혜국 스님은 “내 안의 번뇌, 망상을 다스리려는 노력이 안거이나 저 역시 한평생 안거를 살아보면 내 감정, 내 성질 고쳐나가기가 참으로 쉽지 않더라”며 “모두가 검색의 삶에 익숙해지다보니 사색, 참구의 힘이 약화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해제 이후 수좌들이 안거 기간 파고든 화두를 가지고 대중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폐사된 석종사를 복원하며 바란 것은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자’는 마음입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화나고 슬픈 일이 있으면 그 감정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몇 시간씩 낭비합니다. 이런 건 너무 익은 겁니다. 그런데 내 못된 성질머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찾아 들어가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이건 너무 설은 겁니다. 설은 것은 익게, 익은 것은 설게 해서 여러분이 각자 자신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충주=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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