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크 케르버(6위ㆍ독일)가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4,400만 호주 달러)에서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다.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서리나 윌리엄스(미국)였으며, 1회전 탈락 위기를 딛고 차지한 우승이었기에 더 극적이었다. 케르버는 지난달 3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 13일째 여자단식 결승에서 윌리엄스를 2-1(6-4 3-6 6-4)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대회 전까지 메이저대회에서 2011년 US오픈과 2012년 윔블던 4강이 개인 최고 성적이었던 케르버는 우승 상금 340만 호주 달러(약 29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독일 선수가 테니스 메이저대회 여자단식 정상에 오른 것은 1999년 프랑스오픈 슈테피 그라프 이후 약 17년 만이다. 반면 윌리엄스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더라면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22회 패권을 차지하며 그라프의 통산 2위 기록과 동률을 이룰 수 있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됐다. 메이저 대회 단식 최다 우승 기록은 마거릿 코트(호주)의 24회다. 윌리엄스가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에서 패한 것은 2011년 US오픈 이후 약 4년여만이다. 윌리엄스의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전 통산 성적은 21승5패가 됐다.
케르버는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비웃고 왼손잡이의 강점을 앞세워 각도 큰 샷과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로 윌리엄스를 괴롭혔다. 케르버는 3세트 게임스코어 3-2로 앞선 가운데 윌리엄스의 서브 게임에서 듀스를 반복하며 10분 가까이 피말리는 접전을 벌이다 결국 이 게임을 따내면서 승기를 잡았다. 이어 케르버는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켜 5-2까지 달아났다. 윌리엄스는 3-5로 뒤진 상황에서 케르버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해내 4-5로 추격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맞이해 마지막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케르버는 다시 한 번 윌리엄스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2시간08분의 접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윌리엄스의 샷이 베이스라인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케르버는 그대로 코트 바닥에 누워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공격 성공 횟수에서는 윌리엄스가 47-25로 케르버를 압도했지만 실책에서는 케르버가 13-46으로 훨씬 적었다. 서브 최고 시속은 윌리엄스가 196㎞로 케르버의 164㎞보다 30㎞ 이상 빨랐으나 케르버의 끈질긴 수비에 윌리엄스는 무릎을 꿇었다.
윌리엄스는 자칫 이 대회 첫 판에서 짐을 쌀 뻔했다. 도이 미사키(64위ㆍ일본)와 단식 본선 1회전 경기에서 매치포인트의 벼랑 끝까지 몰렸던 것이다. 케르버는 도이를 2-1(6<4>-7 7-6<8> 6-3)로 힘겹게 따돌리고 1회전 탈락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한 포인트만 더 도이에게 내줬더라면 윌리엄스를 꺾고 우승하는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1회전을 통과한 케르버는 2회전부터 4회전까지 세 경기를 연달아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상대하며 모두 2-0 완승을 거뒀다. 8강과 4강 대진도 비교적 무난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 2위로 올라서게 된 케르버는 “1회전에서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다녀왔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내 생애 최고의 2주였다. 이제 드디어 그랜드슬램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고 울먹였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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