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26일 이후에나 정상화
공항 편의점 식료품도 동나
과자로 끼니 때우며 바닥서 쪽잠
숙소 못 구한 관광객들 아우성
국토부 “임시항공편 최대한 투입”
대기 승객 수송 2, 3일 소요될 듯
울릉도에도 6일간 130㎝ 폭설
목포 등 여객선 운항 전면 통제
한파에 한랭질환자 수 2배 급증
노숙인들은 추위 못 견뎌 쉼터로
“내일도 항공기가 뜨지 않을 거라구요? 모레라도 갈 수는 있을까요?”
23일부터 제주지역에 몰아친 눈보라와 한파로 25일 밤까지 제주공항 활주로가 폐쇄된다는 소식에 이틀째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며 운항 재개를 기다렸던 체류객 1,700여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4일 오전 제주공항 내 항공사 창구 앞은 한 시간이라도 먼저 제주를 빠져나가기 위해 25일 항공좌석 배정 대기표를 받으려는 체류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하지만 23일 결항된 항공기 탑승객에 한해 대기표를 발급하자 상당수 체류객들은 이틀 이상을 더 제주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에 발만 동동 굴렀다. 특히 25일 오전 9시까지로 예고됐던 활주로 폐쇄가 오후 8시로 다시 미뤄지자 체류객들의 다급함은 커졌다.
제주공항 정상화 26일 이후에나 가능할 듯
1박2일 여정으로 제주를 찾았던 박왕석(52ㆍ인천시 거주)씨는 “23일 오전 한라산 어리목을 찾았다가 버스가 끊겨 고립돼 2시간 30분을 걸어 내려왔다”며 “어렵사리 공항에 도착했는데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이틀을 노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황당해 했다. 그는 “공항 내 식당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편의점에도 삼각김밥이나 우유 등 식료품이 동나 제대로 식사를 못한 채 과자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소연했다. 편의점 관계자는 “폭설로 도로가 얼어붙고 식료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진열대를 언제 다시 채울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23일 밤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에서 체류객들에게 담요와 생수 등을 지원했지만 물량 부족 사태를 겪었다. 일부 체류객은 종이박스를 1만원에 구입, 밤을 지새웠다. 제주도는 24일 공항 체류객들을 위해 숙소 주선에 나섰지만 공항 인근 제주시내 대다수 숙소가 포화상태여서 일부는 서귀포 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또 비좁은 공항을 벗어나 제주 지역 숙소를 이용하려던 일부 승객을 상대로 4~5㎞ 구간에 10만원을 요구하는 바가지 택시도 등장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등에 따르면 23, 24일 이틀간 제주를 출발할 예정이었던 승객 6만여명이 폭설에 발이 묶인 것으로 집계됐다. 25일에도 2만9,000여명이 제주공항 출발편을 이용할 예정이지만 항공편은 26일 이후에나 정상화할 전망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공항에서 밤을 지샐 체류객들을 위해 모포와 매트 5,000개, 생수 2만병, 간식 등을 준비했다”며 “공항이 정상화할 때까지 관광객 편의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운항이 재개되는 즉시 정기항공편을 비롯, 임시편을 투입해 수송 인원을 최대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24일 제주공항에서 대기표를 받은 일부 승객은 27일에나 출발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대기 승객을 모두 소화하려면 2, 3일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한편 경북 울릉도에서도 19일부터 이날까지 130㎝가 넘는 눈이 내려 차량이 다니지 못하는 바람에 산간 지역 주민들은 신선식품이 바닥나는 등 사실상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육지로 나왔던 주민 300여명도 배편이 18일부터 일주일째 끊겨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관, 찜질방 등을 전전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에도 폭설과 함께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쳐 목포와 여수, 완도 앞 바다 55개 항로 92척의 여객선 운항이 전면 통제됐다.
서울역 노숙인도 쉼터로 이동시킨 강추위
15년 만에 서울을 덮친 강추위는 ‘풍찬노숙’에 길들여진 노숙인들의 생활 패턴도 바꿔 놓았다. 한파가 몰아친 19일 이후 서울역 13번 출구에 밀집해 있는 노숙인 쉼터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탓에 평소 보호시설을 꺼리는 노숙인들이지만 이번 한파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갈월동 숙대입구역 다시서기센터에도 매일 200여명이 넘는 노숙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여재훈 숙대입구역 다시서기센터 소장은 “보통 오후 9~10시에 찾아오던 노숙인들이 오후 6시부터 찾아와 잠자리를 잡는데도 요즘은 자리가 꽉 찬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비판하며 26일째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은 이날도 칼바람과 맞서 밤을 지샜다. 소녀상 옆에서 잠을 잤다는 이성근(24)씨는 “핫팩을 5개 붙이고 침낭 위에 또 다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비닐과 이불을 샌드위치처럼 덮고 잤는데도 아침에 보니 침낭 위에 서리가 얼어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한파로 저체온증, 동상 등 한랭질환자 수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응급실 530곳에서 한랭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한 결과, 추위가 몰아친 17~20일 55명의 한랭질환자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 직전인 10~16일 발생한 한랭질환자(24명)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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