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내 아파트 주민 대표를 맡은 박모(43)씨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보공개시스템’(www.open.go.kr) 덕을 톡톡히 봤다. 아파트 공동전기료 내역을 검토하던 박씨는 자치구별로 공동전기료 지원율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자신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막막하던 차에 이 사이트를 통해 큰 도움을 얻었다.
박씨는 이곳에서 클릭 한번으로 간편하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점에 놀랐다. 그는 “자치구별 조례와 지원율, 지원금 수준을 바로 알 수 있었다”면서 “그 동안 이런 정보를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걸 몰랐다”고 전했다. 검색하는 방식도 어렵지 않았다. 기관에서 생산한 정보를 알고 싶은 경우 별도의 청구 절차 없이 원문공개서비스에 들어가 기관과 기간을 특정해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세계에서 13번째,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정보공개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이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정보를 자유롭게 청구해 얻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법 제정에 따라 1998년 1월 본격 시행된 정보공개청구제도는 박씨와 같은 일반 시민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정보공개청구제도는 이제 시민 감시기능을 활성화하고,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18년 동안 정보공개청구 23배 ‘빅뱅’
올해 시행 18년째를 맞은 정보공개청구제도는 매년 정보공개건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정보공개율이 안정화 추세를 보이는 등 정착단계에 진입했다.
20일 주무부처인 행자부가 펴낸 ‘2014 정보공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2014년 61만2,856건으로, 2013년 55만2,66건에 비해 11.1% 증가했다. 시행 첫해 2만6,338건과 비교하면 23배로, 비약적인 성장세다.
정보공개청구와 관련해서는 1992년 충북 청주시가 자체적으로 ‘청주시 행정정보공개조례’를 제정했으며, 정부 차원에서는 1994년 총리 훈령을 마련했다. 1996년에는 국회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특히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정보공개청구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온라인 포털 ‘열린정부’를 개통한 뒤 급격히 증가했다. 2014년 기준으로 온라인을 이용한 정보공개청구가 73%로 ‘직접출석’(19%)이나 ‘팩스’(5%) 등보다 월등히 많았다.
정보공개율이 최근 3년 동안 매년 95%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접수된 정보공개 신청 중 정보공개청구가 처리된 비율은 2011년(90.7%) 처음으로 90%대로 진입한 뒤 2012년 이후 2014년까지 95%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처리 기간도 전체 건수의 87%가 법에서 정한 기한인 10일 이내에 처리됐고, 당일 처리된 경우도 9%에 달했다.
열린정부 효과 톡톡
최근에는 국민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기 전에 정부가 미리 정보를 공유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활발하다. 시행 초기에는 행정정보가 궁금한 경우 원하는 정보의 이름을 찾아 청구를 한 뒤 번거로운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 받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사전정보 공표와 원문정보 공개가 활성화하면서 기관 방문 없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미리 공표해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높이는 ‘열린 정부’ 패러다임이 정착하게 된 셈이다.
지자체 중에도 정보공개 청구 없이 사전에 정보의 ‘목록’과 ‘원문’까지 온라인에 미리 적극 공개하는 곳이 늘고 있다. 서울시의 ‘열린정보마당’은 이를 적절히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 시민은 시 홈페이지 내 열린정보마당을 통해 개인정보 등 법률로 정한 일부 정보를 제외하고 국장ㆍ과장 결재문서, 각종 행정정보와 위원회회의록 등 모든 시정 정보를 볼 수 있다.
정보공개위원회 민간위원인 조형곤 21C 미래교육연합 대표는 “과거에는 정부가 정보를 쥐고 시민은 이를 요청하는 민원인 구조였으나 지금은 시민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면서 “시민과 신뢰가 쌓이고 시민 집단지성을 통한 참여를 바탕으로 한 열린 정부 모델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정보공개 서비스에 대한 시민 반응은 긍정적이다. 특히 기관별로 공개하는 ‘생활 밀접형 정보’들이 호응이 높다. 지난달 행자부가 정보공개포털에서 실시한 온라인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국세통계로 보는 전문ㆍ의료ㆍ교육 서비스업 현황’정보가 1위에 올랐다. 이 정보는 사업자의 지역, 연령, 성별을 분석한 정보를 제시해 예비 창업자의 의사결정에 유용했다는 평가다. 이밖에 공공저작물 통합검색(문화체육관광부), 해양레저정보(해양수산부), 이전 가능 우수에너지 기술(미래창조과학부), 전통의학 정보포털 서비스(미래창조과학부) 등 생활밀착형 정보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행자부 관계자는 “기관들이 국민들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시의성 있는 정보를 발굴, 제공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면서 “정보 유용성, 주기적 업데이트, 공표정보 접근 및 검색 평가기준 등 세심한 기준을 마련해 접근성과 활용성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보공개청구제가 정착단계에 진입한 만큼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인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정보공개 건수는 불가피하게 늘어났지만 공개 수준과 접근 방식 등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공공정보는 애초에 행정상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 공동체 전체의 것으로 원칙적으로 최대한 공개해야 하는 방향으로 공개 수준이 확대돼야 한다”면서 “무조건 공개건수를 늘리기보다는 국민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국민 수요조사, 빅데이터 분석 등을 적극 발굴하고 정보 공개포털 검색기능을 개선해 정보와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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