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짜장면에서 국 찌개 고추장까지, 단맛이 식탁 완전 점령

뇌 중추 자극해 중독성… 인슐린 저항성 높여 당뇨 등 성인병 우려

우리사회 ‘설탕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금 20~30대는 당 성분이 많은 분유를 먹고 자라 단맛 중독 가능성이 태생적으로 높다”며 “당분 과다섭취는 당뇨병, 비만 등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이 설탕의 늪에 빠져 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너도나도 달달한 음식을 입에 달고 살고 있는 것. 더 걱정스런 대목은 단맛 중독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설탕이 짜장면, 떡볶이 같은 대중음식을 넘어 국, 찌개나 고추장 같은 일상음식과 양념에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놔둬도 괜찮을까. 이러다가 우리가 설탕 과다 섭취로 인해 영양 불균형은 물론 각종 신체ㆍ정신적 증상에 시달리게 되는 ‘슈가 블루스’, 즉 설탕의 저주에 걸려드는 건 아닐까.

요리연구가 백종원은 ‘설탕열풍’에 불을 지핀 장본인으로 지목 받는다. 그로 인해 소금과 함께 대표적인 건강의 적으로 찬밥신세이던 설탕이 국민적 환대를 받는 지위에까지 올랐다는 주장이다. “문제 있음 설탕 넣어유~”라는 멘트로 널리 알려진 바, 그가 각종 TV 요리 프로그램에 나와 단맛을 널리 전파한 것이 열풍의 진앙이라는 것이다. 하긴 그가 방송에서 소개한 식재료들은 이튿날 동네 마트에서 동이 난다 하니 그의 영향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슈가보이’ 백씨의 말대로 주저없이 된장찌개에도 설탕을 넣는다 한다. 복수의 요리 전문가들도 “사업 수완이 탁월한 백씨가 대중의 욕구를 간파한 것이 주효했다”고 했다.

“분유 먹고 자란 20-30대 태생적 단맛중독자”

20~30대 젊은 층이 자꾸 단맛에 빠져드는 데는 태생적인 원인이 있다는, 좀 더 예리한 분석도 나온다. 바로 ‘분유’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 즉, 국내 분유 판매량이 1980년대 말부터 급증했는데, 분유에는 모유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糖) 성분이 들어 있어, 날 때부터 분유를 먹고 자란 지금의 20~30대는 단맛 중독의 가능성이 태생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 페미니스트 문화 확산, 경기 활성화 등에 따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났고 이 여파로 당시 출생한 아이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따라 날 때부터 단맛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지금의 20~30대는 금수저가 아니라 ‘슈가(sugar)수저’를 물고 나온 셈”이라고 했다.

실제 통계치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수급표를 살펴보면 1986년까지 49g에 불과했던 국내 1인당 설탕공급량은 1989년부터 1991년 사이 84g으로 급증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인의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은 61.4g으로 2008년 49.9g에 비해 23% 늘었는데, 이중 대학생 및 청년(만 19~29세)의 당 섭취량은 65.7g, 중ㆍ고교생(만 12~18세)은 66.2g으로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황 칼럼니스트는 “출생 후 분유를 통해 단맛에 길들여진 세대가 자신의 입맛을 알아주는 백종원이란 구세주를 만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황유철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어린이, 청소년 등 젊은 층의 경우 음식이 아닌 가공식품에 의한 당분 섭취비율이 전체 당분 섭취의 67%를 차지하고 있다”고 또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사회의 단맛 중독증은 이미 심각한 수위다.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단맛 열풍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서울 시내 한식전문점에서 일하는 A요리사는 급기야 직접 시험을 해봤단다. 설탕을 넣지 않은 불고기와 설탕을 듬뿍 친 불고기를 손님들에게 각각 나눠줘 봤던 것. 결과는 예상대로 ‘설탕 불고기’의 완승. 설탕을 안 넣은 불고기를 먹은 손님들은 “주방장이 새로 왔나? 음식 맛 왜 이래?”라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한다. A요리사는 “불고기는 물론이고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요리사들 전언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갈비 제육볶음 낙지볶음 떡볶이 짜장면 탕수육 닭강정 등 대중음식에 설탕이 과다 사용되고 있다. 한 요리사는 “조리사시험을 준비할 때 학원에서 권장 레시피로 연습하는데 설탕이 안 들어간 양념을 찾아볼 수 없다”며 “가공식품에도 맛과 촉감, 보존성을 좋게 하기 위해 설탕을 사용한다”고 귀뜸했다. 이 요리사는 이어 “짜장면에는 캐러멜도 모자라 단맛을 더하기 위해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짜장면은 그야말로 미원과 설탕 범벅”이라고 했다.

“음식점이 설탕 안 넣으면 장사 포기하는 것”

학생들의 단골 간식인 떡볶이도 이젠 매운맛이 아니라 단맛이 맛을 결정한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떡볶이집을 운영 중인 B씨는 “설탕을 조금만 적게 넣어도 아이들이 맛이 없다 한다”고 했다. 백종원씨는 지난 연말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떡볶이엔 설탕이 들어가야 한다. 전형적인 단맛이다”라고 했다.

단맛은 가공식이나 대중음식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식탁을 광범위하게 점령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집에서 매일 먹는 국과 찌개류에도 이미 단맛이 깊이 스며들었다. 요리사들은 국과 찌개류가 단맛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로 고추장을 지목한다. 시판 고추장에는 물엿, 찹쌀풀, 밀가루풀 등이 첨가되는데 이로 인해 고추장 맛이 예전보다 달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 칼럼니스트는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통감(痛感)을 유발하는데 통감을 이겨내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돼 매운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서 “단맛은 도파민이 분비될 때까지 매운맛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맵다고 느끼는 음식에는 단맛이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제 단맛이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대중음식인 짜장면. 한 요리사는 “자극적인 맛을 내기 위해 짜장면에는 캐러멜과 함께 설탕이 첨가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단맛이 무조건적인 배격 대상일 리 없다. 특정 음식을 통해 단맛을 즐기는 건 자연스러운 취향이다. 문제는 모든 음식들이 죄다 설탕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 칼럼니스트는 “서양에서는 케이크 등 단맛을 내는 음식을 별도로 먹지 우리처럼 모든 음식이 달지는 않다”면서 “단맛에 길들여지면 신맛, 쓴맛 등 다른 맛에 집중할 수 없게 획일화 돼 결국 감각을 잃는 것은 물론 다양한 문화를 만들 수 없는 미개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맛에의 탐닉은 왜 위험할까. 전문의들은 필요 이상으로 설탕 등 당분을 섭취하면 혈당ㆍ인슐린 저항성ㆍ중성지방 상승, 지방간,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이 발생하기 쉽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건강 상의 최대 위협은 인슐린 저항성이다. 김성래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단 음식은 혈당 수치를 빠르게 올리는데, 우리 몸은 이에 맞춰 췌장에서 인슐린 호르몬을 분비해 빠른 혈당상승을 저지한다”면서 “인슐린 호르몬은 혈당을 빠르게 내리긴 하지만 혈당 일부를 지방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당분을 과다 섭취하면 인슐린 농도가 높아져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혈증 등 만성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단맛에 길들여지면 인슐린 작용 등으로 인해 원하지 않아도 우리 몸은 효과적으로 살이 찌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경고했다.

“당분 과다섭취는 당뇨병 비만 등 성인병 지름길”

단맛 중독은 뼈 건강은 물론 집중력을 떨어뜨려 학업에도 안 좋다. 박용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각은 만 4세무렵 완성되는데 어려서부터 단맛에 길들여지면 대사과정에서 칼슘 배출이 늘어 뼈 건강에 좋지 않고, 뇌 발달에 필요한 다른 영양소의 섭취 결핍을 불러 학업성취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실제 조사결과 당분 섭취가 많은 아이들은 아이큐(IQ) 검사 수치가 좋지 않고, 집중력과 주의력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단맛 탐닉의 또다른 위험성은 중독성이다. 한번 빠져들면 여간해선 헤어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전문의들은 단맛중독이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지속적으로 단맛에 노출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마약중독과 같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황유철 교수는 “당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당분이 대뇌 시상하부의 특정부위 신경세포에 작용해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마치 아편과 비슷한 행복감을 유발해 단 음식 섭취량이 점점 증가한다”고 했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정도를 ‘역치’라고 하는데, 한번 단맛에 빠지면 점점 더 달아야 역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결국 중독에 이른다”고 했다.

설탕중독의 치명적 늪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당분 섭취를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실천하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국내 영양섭취기준은 총 당류 섭취량을 전체 섭취 에너지의 10~20%로 제한하고 있다”며 “특히 식품의 제조 및 가공 시 첨가되는 당과 조리 시 사용하는 시럽, 설탕, 꿀 등 유리ㆍ첨가당은 총 섭취 에너지의 10% 이내로 섭취해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 [영상] 우리 곁에 숨어 있는 의외의 ‘슈가 푸드’ http://goo.gl/o2fQhc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