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 '집'

근현대 주거 역사 연구한 건축학자
집안 공간ㆍ생김새 등 변천사 정리

전남일 지음

돌베개 발행ㆍ368쪽ㆍ2만원

마당에 있던 ‘변소’는 언제부터 집안 ‘화장실’로 들어왔을까. 지붕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섰던 골목은 왜 많이 사라졌을까.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이들이 고시원 한 칸 방으로 옮겨간 내력은 무엇일까. 흙바닥에 아궁이가 있던 부엌은 이제 보기 어렵다. 집은 어쩌다가 밤에 잠시 들어가 잠 자는 숙소가 되어 버렸을까. 요즘 흔히 보는 다세대주택의 원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그나저나 아파트 단지는 왜 이리 많아졌나. 세상이 변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다. 거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과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친다.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를 연구해온 건축학자 전남일(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 전공 교수)이 쓴 ‘집’은 집안 구석구석과 안팎 풍경, 생김새와 쓰임새를 두루 살펴 한국 사회에서 집의 변천사를 정리하고 있다. 한옥이 양옥으로, 단독주택이 다세대주택으로, 부엌이 주방으로, 안방이 부부의 침실로, 마을이 단지로 바뀌는 내력과 양상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이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준다“는 것을.

주거 공간의 변천사가 곧 사회사임은 분명하다. 이 책의 장점은 이 당연한 명제를 두무뭉술 짚지 않고 정밀하게 점검하되 집을 둘러싼 물리적 사회적 환경까지 포괄함으로써 미시와 거시, 두 시선을 종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로 대신했다. 손으로 그린 각 공간 구조의 평면도와 스케치에 온기가 담겼다. 한국인이 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집을 원했는지는 당대의 신문, 잡지, 문학작품 등을 인용해 느낄 수 있게 썼다.

안방을 ‘부부 침실’로 처음 부른 것은 1970년 대한주택공사가 한강맨션아파트를 지으면서부터다. 전통한옥에서는 여성 공간이었고, 근대 가옥에서는 가족 공동 생활공간이었다. 그림 전남일. 도판 제공 돌베개

책은 3부로 돼 있다. 집안 여러 공간의 쓰임새, 집 생김새의 변천사를 다룬 1, 2부에 이어 3부는 집들이 모여서 이루는 풍경, 다시 말해 더불어 사는 모양새의 변천사를 다룬다.

안방만 해도 기능과 성격이 많이 변했다. 요즘이야 흔히 부부 침실로 통하지만, 예전에는 밤에만 그랬고 낮에는 온 가족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핵가족이 일반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아이들 방을 따로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 영향이다. 요만 펴면 온 식구가 같이 잠 잘 수 있던 방에 침대가 들어오면서 안방은 더욱 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전통 한옥에서는 아예 남자와 여자의 공간이 분리돼 있어서 남녀가 한방을 쓰지 않았다. 남성의 공간이던 사랑방이 사라지고 가족과 여성 중심으로 집안 구조가 바뀐 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농사 짓고 살던 시절과 달리 남자들이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오게 되면서 집안에 남성의 공간을 따로 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남자, 여자, 노소에 따른 방의 위계질서도 무너졌다.

한옥에서 집의 중심이던 대청마루가 사라지고 응접실로, 다시 거실로 변하는 과정에는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 일제강점기 들어 ‘모던 생활’을 주도하던 신여성들은 서구 취향의 소비와 실내장식, 주생활을 선호하면서 별로 ‘쓸모 없어 보이던’ 대청마루를 밀어냈다. 그 시절 잡지나 신문에 실린 글에서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전 어머니들이 음식 만들고 불 때고 상 차려서 방으로 들고 나르느라 종종걸음 치던 재래식 부엌은 불편하고 고된 노동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온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신문에는 “부엌은 식모만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낡은 생각부터 우리네 주부들은 고쳐야 한다고 깨달았다”며 부엌 개량론을 외치는 주장이 남아 있다. 부엌이 확 달라지는 과정은 여성 해방과 맞물린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집의 의미다.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이웃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고 싶은가. 집을 부동산 가치로만 따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산 것인가.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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