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
美서 구덩이 판 흔적화석 최초 발견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논문 발표
“하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네요.”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48)은 기자들의 문의전화로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지치지 않고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발견한 흔적화석(trace fossils)이 왜 구애행동 화석이며 그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즐겁게 설명해 나갔다. 임 연구관은 세계 최초로 공룡의 구애행동을 증명하는 화석을 발견했다는 연구 내용을 7일 학술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임 연구관이 마틴 로클리 콜로라도대 교수 등 공동국제연구팀과 함께 발견한 구애행동 화석은 공룡이 땅바닥에 발로 구덩이를 판 흔적이다. 미국 콜로라도 주 내 서부 델타(Delta) 인근 국립보존지구와 동부 공룡 골짜기(Dinosaur Ridge) 등 총 50여 개의 지점에서 비슷한 흔적이 발견됐다. 이 흔적을 수컷 육식공룡의 구애행동의 흔적으로 보는 근거는 현생 동물의 생태에 있다. 이족보행하는 새들 중 땅바닥에 알을 낳는 타조와 물떼새 등이 구애할 때 이런 행동을 한다. 임 연구관은 “이족보행하는 수각류 육식공룡 중 작은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됐다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에 공룡의 생태를 연구할 때는 새들의 행동을 참고해 추론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공룡은 왜 구애를 하면서 구덩이를 팠을까. 수컷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증명했다, 힘 자랑을 했다, 둥지를 파는 기술을 보여줬다는 등 다양한 가설이 나왔다. 임 연구관은 “정말 ‘구애의 춤’일 수도 있다”고 봤다. “수컷 동물이 구애할 때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벌이나 새도 화려한 춤을 추면서 암컷의 환심을 사려 합니다. 암컷이 수컷의 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는 알 수 없죠. 분명한 건 수컷이 구덩이를 팠고 그 모습이 암컷의 마음에 들어야 짝짓기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임 연구관은 현재 한국 공룡 연구의 대명사다. 2012년 한국 최초의 4족 보행 조각류 공룡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등 연구 성과도 뛰어나지만,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룡 교육’에도 열심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원래 미국에서 해양생물을 전공하려던 그가 갑자기 공룡에 빠지게 된 계기는 1989년 유럽 여행이었다. 유럽의 자연사박물관에서 난생 처음으로 공룡 뼈를 본 것이다. 임 연구관은 “그 전까지는 공룡이 유니콘처럼 상상의 동물인 줄 알았다”고 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공룡 뼈를 실제로 볼 수 없던 시절이라 공룡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룡 연구와 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나처럼 공룡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이후 세대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번 발견은 미국에서 올린 성과지만, 임 연구관은 한국의 공룡 화석에도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한국에서 공룡 뼈 화석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한국은 중국처럼 뼈 화석이 많이 나올 만한 자연 여건이 안 되고 연구자도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한국의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는 세계 최대 규모로 전세계 연구자들이 자주 찾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임 연구관의 당면 목표는 남해안 일대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의 세계자연유산 등재 명분을 쌓기 위한 비교연구다. 이를 위해 그는 “이미 지난해 우리의 경쟁자인 스페인 화석지 연구를 끝마쳤다”며 “올해는 포르투갈로 향한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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