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새해의 첫날 아침마다 우리에게 영혼을 새로 장만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주신다면 어떨까요? 어떤 이들은 이 시인의 영혼을 골라가질지도 모릅니다. 이 영혼은 아기의 것처럼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가 아닙니다. 무광택 코팅지처럼 오염물질이 달라붙지 않고 혹시 묻더라도 금세 닦이는 성인의 겸손하고 강건한 마음도 아니구요.
오히려 시인은 쉽게 물들고 쉽게 유혹에 빠지는 영혼, 너무 잘 찢기고 너무 잘 부서지는 영혼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런 자기 영혼의 생김새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인에게는 어떤 시작도 순백의 출발이 아니라 그 전날 밤의 흔적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 일들을 깡그리 잊을 수는 없거든요.
새해라고 완전히 새것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사랑 곁에는 뱀이 있고 그 뱀은 독을 품고 있지만, 우리는 맨 살갗을 계속 물리면서도 어린 꽃들 근처로 자꾸만 다가갑니다. 이토록 여리고 섬세하지만 용기 있는 마음이 새해 첫 아침에 당신에게 깃들기를, 그래서 날마다 당신의 햇빛이 푸르기를.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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