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탈구됐다.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것을 고쳐야 할 운명을 타고 나다니.”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작품은 선왕의 죽음과 복수를 통해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대립되는 가치들이 뒤섞인 ‘시대의 탈구’가 사회의 암울한 징후인 동시에 법과 도덕을 넘어 정의가 가능해지는 지점임을 그린다. 말보다 차라리 시(詩)에 가까운 대사는 한 줄 한 줄마다 복잡다단한 상황과 갈등, 감성을 함축한다. 그의 작품이 시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해석되고 변주하는 이유다.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타계 400주기를 맞아 국내 공연계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경쟁적으로 올린다.
국립극단은 셰익스피어를 전위적이고 도발적으로 비튼다. ‘겨울이야기’(1월 10~24일 국립극장)가 서막을 연다. 질투와 증오, 불화로 빚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그린 셰익스피어 후기작으로 2008년 헝가리 국립극장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파격적 작품을 선보인 로버트 알폴디가 연출한다. 4월에는 영국 글로브극장 투어 및 유럽 해외공연으로 호평을 받은 왕 시아오잉 연출의 ‘리차드 3세’를 초청 공연한다. 2012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동제작하며 교류 협약을 맺은 중국국가화극원과 함께 마련한 자리다.
‘십이야’(12월 중)도 준비 중이다. 고대 국가 일리리아를 배경으로 쌍둥이 남매가 얽힌 좌충우돌 사랑이야기를 그린 희곡으로 ‘햄릿 아바따’ 등 꾸준하게 셰익스피어 작품을 실험적으로 만들어온 임형택이 연출을 맡았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셰익스피어 연극은 16세기 작품임에도 어느 나라에서나 동시대 연극으로 현지화할 수 있다”며 “현대예술이 구현하고 있는 삶의 모호함, 절망에 빠진 부조리적 상황까지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매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역시 파격을 선택했다. 덴마크 리퍼블리크 시어터의 음악극 ‘햄릿’(10월 12~14일)은 영국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가 작곡과 노래를 맡았다. 원작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골라 21개의 곡을 입혀 노래와 대사를 교차시킨다.
세종문화회관은 내년 셰익스피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서울시극단이 ‘헨리4세-왕자와 폴스타프’(3월 29일~4월 14일)와 햄릿을 국내 버전으로 번안한 ‘함익’(김은성 각색ㆍ9월 30일~10월 16일)을 준비한다. 두 작품 모두 연출하는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은 “모던하면서도 고전이 가진 연극적 깊이를 담은 무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가족음악극 ‘템페스트’(1월 13~31일)도 김한내 연출, 오세혁 각색으로 무대에 올린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바탕으로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맥베드’(11월 24~27일)를 공연한다. 셰익스피어 명작의 하이라이트로 선보이는 ‘셰익스피어 발레 스페셜 갈라’(10월 28~30일), 창작발레 ‘햄릿-구속과 해탈 사이’(10월 28~30일), 서울발레시어터의 ‘한여름 밤의 꿈’(11월 11~13일) 등 국내 대표 발레단들과 함께 ‘셰익스피어 in Ballet’ 시리즈도 선보인다.
2004년 이후 격년제 연극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연극열전’은 ‘햄릿’을 재창작한 ‘햄릿_더 플레이(가제ㆍ8~10월 충무아트홀)’를 올린다. 성인 햄릿과 소년 햄릿의 심리를 교차해 복수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양대 발레단도 셰익스피어 물결에 동참한다. 국립발레단은 올해 아시아에서는 처음 라이선스를 획득한 뒤 공연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희극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6월23∼26일 예술의전당)를 다시 올린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케네스 맥밀란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10월 22~29일 예술의전당)을 4년 만에 선보인다. 국립오페라단도 샤를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12월 8일~11일 예술의전당)을 호주 출신 명장 엘라이저 모신스키의 연출로 선보인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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