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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체험부터 자발적 야근까지.. 연애포기세대의 성탄 나기

입력
2015.1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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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에 나홀로 만족 추구

적극적 계획 세워 24, 25일 돌파

싱글 남녀 66% “혼자 보낼 예정”

●남은 휴가 털어 해외여행 떠나고

인적 드문 강원도 설산 등반

연휴 내내 클래식 공연 감상도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싱글 4년차인 직장인 김선욱(33ㆍ가명)씨는 지난주 혼자 도쿄 여행을 떠났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김씨는 스누피를 만나러 달려갔다. 스누피 카페에서 커피를 즐긴 그는 스누피 샵에 들러 한국에서 보지 못한 각종 스누피 기념품을 구경한 후 열쇠고리, 피규어, 쿠키를 샀다. 크리스마스에 자기 자신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셀프 산타놀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찰스 먼로 슐츠의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에 푹 빠졌던 그는 대학원생 때부터 인형, 책, 애니메이션DVD, 가방 등 스누피 상품을 수집해 현재 수십 점에 이른다. “피너츠를 보며 ‘개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그는 직장 사무실에 갖다 둔 스누피 피규어만 10여점에 달하는 스누피 마니아다. 24일부터 국내 개봉하는 만화영화 ‘스누피: 더 피너츠 무비’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 김씨의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이다. 김씨는 “연인, 가족들로 복작거리는 24, 25일에는 철야근무를 하고, 토요일 극장을 찾아 ‘셀프 크리스마스’를 즐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혼자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워 보내는 20~30대 ‘셀프크리스마스족’이 등장했다. 집에서 홀로 크리스마스를 ‘때우는’ 게 아니라 적극 계획을 세워 명소를 찾고, 자신에게 줄 선물을 사고, 취미생활을 누린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이달 16일부터 22일까지 20~30대 싱글 남녀365명(남168명ㆍ여197명)을 대상으로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을 설문조사한 결과 55.1%(201명)이 집에서 쉬겠다고 답했지만, 절반 가량이 여행(19.7%), 영화ㆍ공연 관람(14.5%), 쇼핑(6.6%), 축제 참석(3.3%) 등을 하겠다고 답했다. 누구와 보낼 계획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3명 중 2명(66.3%)이 혼자 보내겠다고 답했고 가족(13.7%), 친구(12.1%), 썸남썸녀(3.3%), 직장동료(2.5%)가 뒤를 이었다. 요컨대 응답자 중 최소 10%이상이 크리스마스에 혼자서도 여행을 가거나 영화ㆍ공연을 보고, 축제를 즐기는 셈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

대기업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김소리(29ㆍ가명)씨는 몇 해 전 연말 휴가를 내고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25일에는 집을 비워달라’는 단서를 달아 방을 내주었다. 뉴욕 명소를 안내하며 김씨와 관광을 했던 친구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당연하다는 듯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일찌감치 집을 떠났다. 김씨는 이날 내내 니트 티셔츠, 화장품을 사 “옆구리 시린 나 자신에게 선물”했고, 홀로 링컨센터에서 링컨체임버소사이어티의 연주회를 본 후 빈 집에서 잠을 청했다.

25일 새벽 김씨는 전날 쇼핑한 물품을 가득 실은 트렁크를 택시에 싣고 JFK공항으로 향했다. 그녀는 “혼자 보내는 게 싫어서 크리스마스가 사라지도록 비행 일정을 짰다. 25일 아침 10시 뉴욕을 출발해 26일 새벽 서울로 돌아오기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금방 지나가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혼자 밥 먹고 길거리 돌아다니는 것조차 남들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날에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기분전환)’를 받는다. 그래도 견디기 어려울 때는 빨리 보내도록 일정을 만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 크리스마스 연휴기간 내내 클래식 공연을 볼 계획이다.

김씨처럼 수년간의 사회생활로 경제력을 갖춘 20~30대 싱글 중 꽤 많은 이들은 크리스마스 전후 긴 여행을 계획한다. 대기업 과장 3년 차인 손열음(33ㆍ가명)씨는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강원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애초에는 남은 연차휴가를 모두 털어 독일 크리스마스마켓에 갈 예정이었지만, 파리 테러 이후 일정을 국내로 바꿨다. 손씨는 “몇 년 째 지방 본사로 근무를 신청했는데, 내달 가기로 확정됐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보다 일로 성공하고 싶어 신청했지만 삶의 기반이 바뀌는 것 같아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도 든다. 크리스마스 기간 정선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생과 멀리.. 산으로 가자

캐럴과 팔짱 낀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멸절된 공간에 머물고 싶은 싱글들은 좀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3년 전 크리스마스를 보름 앞두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장인 장사라(33ㆍ가명)씨는 그 해 크리스마스를 모태솔로였던 여동생과 함께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의 템플스테이로 보냈다. 장씨는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었다”며 “산사 생활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기본이라 하루가 금방 갔다. 절에 도착해 발우공양 끝나고 타종, 108배 하고 저녁 8시에 곧장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나니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싱글 2년 차인 직장인 권혜은(27)씨도 올해 크리스마스에 강원도 설산을 등반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직장에서 받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안주 삼아 혼자 자취방에서 로맨스 영화 3편을 보며 와인 2병을 마셨다. 권씨는 “원래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면서도 “사서 고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작년처럼 ‘궁상의 끝’을 달리고 싶진 않다. 크리스마스 내내 강원도 선자령과 바우길 10여㎞를 걸으며 올해 쌓인 액운을 버리고 깨끗하게 내년을 맞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12월 내내 등산복, 아이젠, 스패츠 등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장비들을 구입하고 “예쁘다고 소문난” 강릉 바닷가 카페,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장칼국수집 약도도 출력했다.

연휴에도 오직 취직준비

심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20~30대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돈 들이고 시간 들여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기’는 사치다. ‘모태솔로’인 공익근무요원 김다솔(22ㆍ가명)씨는 올해 크리스마스 날에 근무하는 구청 근처 카페에서 취업 스터디를 할 예정이다. “항상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그는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아동복지시설 ‘번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여자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봉사활동에 참가했지만, 예상대로 이날의 봉사활동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김씨는 “올해는 취업 스터디 친구들과 모여 C언어 문제집 풀고 답 맞춰볼 계획인데 한번 시작하면 4~5시간이 금방 간다”며 “스터디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조촐하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딱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술 마실 돈 아껴서 옷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취직한 싱글남 윤홍천(27ㆍ가명)씨는 3년 전 크리스마스 때 ‘지옥 알바’로 불리는 택배상하차장에서 근무했다. 당시 수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윤씨는 정신무장도 하고 용돈도 벌자는 생각에 크리스마스 전후 5일간 출근도장을 찍었다. 윤씨가 일한 상하차장은 수도권에서 모인 택배물량을 내려 분류한 뒤 다시 실어 전국으로 보내는 작업장. 오후 8시부터 시작된 상하차 작업은 다음날 새벽 5시에야 끝났다. 윤씨는 “크리스마스 때 제일 괴로운 건 애들 선물로 나오는 초대형 장난감이다. 로봇, 레고 박스는 그래도 양반인데 인형의 집이나 플라스틱 자동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일제히 한숨 쉬고 웃는다. 일당으로 10만원 정도 챙겼는데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는 것만으로 뿌듯한 기분이 들고 세상일에 겸허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N포세대의 슬픈 자화상

‘셀프 크리스마스족’의 확장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자랑하면서도 장기불황으로 생애주기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N포세대’ 등장과 맞물린다. 고학력에 최상위 멋을 알지만 취업은 어렵고, 어렵사리 직장을 찾더라도 먹고 살만한 임금과 고용 안정을 누리는 이는 소수다. 자본주의 양극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전세 또는 월세로 거주하며 좋게는 싱글라이프, 실제로는 고단한 1인분의 삶을 사는 20~30대의 반영인 셈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에이치알이 올해 10월 20~30대 회원 1,6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157명(69%)가 자신을 ‘결혼 연애 출산 꿈과 희망 등을 포기한 N포세대’라고 답했다. 가장 많이 포기한 욕망으로는 결혼이 56.8%(복수응답)로 1위를 차지했고, ‘꿈과 희망’(56.6%), ‘내 집 마련’(52.6%), ‘연애’(46.5%), ‘출산’(41.1%), ‘인간관계’(40.7%), ‘건강’(26.5%), ‘외모’(25.4%) 등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평균 5가지를 포기하고 있었다. 하나만 꼽으라고 했을 때는 가장 처음 포기한 욕망이 ‘연애’(20.4%)였다. 미래가 불안정한 20~30대가 연애조차 사치라고 푸념하면서 혼자 성탄일을 즐기는 청춘이 늘어나게 된 셈이다.

살인적 주거비와 생활비, 학자금 대출 상환 압박에 더해 미래를 위한 저축까지 감안하면 대부분의 청춘들은 데이트 비용을 대는데도 힘이 부친다. 듀오가 올해 8월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전국 미혼남녀 561명(남257명ㆍ여304명)를 대상으로 질문한 결과 한국의 20~30대 커플은 평균 일주일에 1.9회 만나 5시간 27분 동안 데이트를 하고, 하루에 지출하는 데이트 비용은 5만5,900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20~30대 한 달 데이트 비용을 추정해보면 약 48만7,448원. 20대(2014년 기준 218만2,500원)~30대 초반(293만3,333원)의 월급 5분의 1정도를 데이트에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5인 이상 상시 공용업장을 대상으로 한 통계라 현실은 더 팍팍하다.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10월 15∼29세 청년층 취업자 증가분의 100%를 20~24세가 채웠고, 새로 취업한 20~24세 22.9%가 주 36시간 미만인 시간제 일자리였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5,580원을 받는다면 월 87시간을 일해야 ‘평균의 데이트’를 누릴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마스 셀프족’의 상당수가 취업 준비나 야근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연애나 결혼보다 사회적 성공을 우선 가치로 둔다는 점도 씁쓸한 공통점이었다. 김선욱씨는 “겨우 취직은 했지만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고, 대기업 커리어 우먼인 손열음씨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자격증 따고 스펙 쌓다 보니 혼기를 놓쳤지만, 아직도 연애나 결혼을 위해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ior@hankookilbo.com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 (성신여대 국어국문과 4년)

유해린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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