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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 가지 없으면 크리스마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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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 가지 없으면 크리스마스 아니다

입력
2015.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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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 로스 카랄로레스에 걸린 하몽. 전라도 홍어처럼 스페인 잔치에 빠지지 않는 이 영혼의 음식은 스페인 전통 음식점의 빼놓을 수 없는 데코레이션이기도 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 로스 카랄로레스에 걸린 하몽. 전라도 홍어처럼 스페인 잔치에 빠지지 않는 이 영혼의 음식은 스페인 전통 음식점의 빼놓을 수 없는 데코레이션이기도 하다.

소울 푸드 ‘하몽’

돼지 뒷다리 통째로 숙성ㆍ발효

질 좋은 하몽, 수백 유로 호가

크리스마스는 원 없이 먹는 날

국민 와인 ‘카바’

숙성기간 짧아 톡 쏘는 맛 특징

샴페인보다 저렴한 가격이 매력

달콤 정점 ‘투론’

크리스마스에 카바와 즐기는 과자

발렌시아 전통 디저트서 전국구로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타파스, 식사를 제쳐두고도 사먹는다는 추러스, 염장 발효고기로 최고의 찬사를 받는 하몽까지 스페인의 음식은 세계미식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전통 음식강국,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가려진 스페인 음식의 가치가 재발견된 건 최근의 일이다. 웬만한 와인 생산국에서 필수 여행 코스로 자리잡은 와이너리 투어부터 하몽 관광 루트개발까지 농축산물 생산, 가공에 서비스까지 융합한 이른바 ‘6차 산업’을 시작하며 부가가치가 한껏 올라갔다. 여기에 과학을 음식에 접목시킨 분자요리, 유럽 여행일정마저 바꾸게 만든다는 페란 안드리아 셰프의 레스토랑 엘 불리가 유럽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요즘 요리학교를 가려면 스페인으로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미식 트렌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입맛을 지닌 스페인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먹고 마시는 건 무엇일까. 여기자협회 ‘스마트팜’ 단기연수과정으로 스페인 음식문화를 취재했다.

스페인 최대 명절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다. 우리로 치자면 추석과 설날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있는 셈인데, 우리의 명절처럼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마시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담소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크리스마스 당일 점심에는 온가족이 둘러 앉아 2~3시간 가량 길고 긴 식사를 이어간다.

스페인에서도 식문화가 풍부한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레스토랑 살바를 운영하는 칼밍고씨는 “각 지방마다 크리스마스 고유 음식이 있는데, 카탈로니아 지방은 칠면조와 병아리콩을 푹 끓여 만든 수프 에스쿠데야를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함경도 설날 음식 만둣국이 경상도에서는 생소하듯, 카탈로니아의 에스쿠데야는 이웃 도시 아라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크리스마스 전통식이다. 세비야에서는 크리스마스 메인 요리로 미국식 칠면조구이를 내놓기도 한다. 새우나 바다가재 찜도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크리스마스 음식이다. 전라도 잔칫상에는 홍어회가, 경상도 제사상에는 상어고기가 오르듯 지역마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전통식도 가지각색이지만 지역불문 반드시 갖춰서 온 가족이 나눠먹는 음식은 대략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은 하몽

크리스마스 음식 첫 번째는 스페인 ‘소울푸드’ 하몽(Jamon)이다.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천일염에 절여 6개월에서 길게는 4년까지 자연바람에 숙성, 발효시켜 만드는 건조 육회로 스페인 잔치상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전통식 중 하나다. 숙성 과정에서 지방이 파라핀처럼 굳어 독특한 풍미를 만들기 때문에 잘 숙성된 하몽일수록 ‘지방이 목젖에 딱 붙는’ 식감을 준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집마다 질 좋은 하몽 한쪽을 통째로 사서 연휴 내내 먹고 또 먹는다. 에피타이저로 크리스마스 만찬에 제일 먼저 식탁에 내놓는데 후식이 나올 때까지 막대모양의 과자 그리시니에나 빵에 곁들여 먹거나 생햄 그대로 손으로 집어 먹는다.

10년째 스페인에 살고 있는 교포 사라 박씨는 “스페인인에게 하몽은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의 신성한 음식이다. 하몽 때문에 스페인인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하몽만을 전문으로 ‘저미는’ 장인(마에스트로 하모네로)과 하몽 전문 요리를 위한 하몽 카빙 교육 전문기관이 따로 있을 정도다. 장인이 쓰는 하몽 전용칼도 물론 따로 있다. 질 좋은 하몽은 7㎏짜리 다리 하나에 수백 유로를 호가하기 때문에 스페인인들의 소원 중 하나는 질릴 때까지 하몽을 먹어보는 것이라고. 크리스마스는 그 소원을 푸는 날이다.

훌리안 마틴사가 개발한 하몽 관광 상품을 구매하면 하몽 마에스트로가 하몽을 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훌리안 마틴사가 개발한 하몽 관광 상품을 구매하면 하몽 마에스트로가 하몽을 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훌리안 마틴사가 개발한 하몽 관광 상품을 구매하면 하몽 마에스트로가 하몽을 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훌리안 마틴사가 개발한 하몽 관광 상품을 구매하면 하몽 마에스트로가 하몽을 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기후엘로 마을은 하몽 중에서도 질이 좋은 이베리코 하몽의 70%를 생산하는데, 최근에는 와이너리 투어를 벤치마킹한 관광 상품까지 만들었다. 돼지들이 뛰어 노는 방목장부터 돼지 다리를 천일염에 절이는 과정, 씻어 건조한 후 살에 여러 번 기름을 발라 말리는 전 과정이 ‘수제’로 이뤄지는 것을 보고, 먹는다.

이곳에서 관광루트를 처음으로 선보인 훌리안 마틴사(社)의 루이스 미구엘 수출 담당 매니저는 “스페인 사람들은 중요한 날이면 항상 하몽을 먹지만 특히 크리스마스에는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10~12월에 전체 생산량의 35%가 판매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초가 최대 성수기”라고 말했다.

물론 유럽 다른 나라에도 건조 육회가 있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와 스페인의 하몽이 무슨 차이가 있냐?”는 질문에 루이스의 눈이 동그래진다. “프로슈토가 자전거라면 하몽은 비행기”란 대답이 나온다. 하몽은 돼지 품종과 사육방식에서 따라 크게 하몽 이베리코와 하몽 세라노로 구분되는데, 스페인이 자랑하는 하몽 이베리코는 까만 발굽이 특징인 이베리코 품종의 흑돼지로 만든다. 크리스마스에 스페인 대부분 가정은 하몽 이베리코를 통째로 산다. “발목이 가늘고 다리가 삼각형 모양을 갖춘 납작한 하몽”이 합격점을 받는다. 이런 하몽을 썰면 단면이 쇠고기 수준의 붉은 빛을 띤다. 질이 낮은 하몽일수록 선홍색에 가깝다. ‘자전거 수준’이라는 프로슈토도 선홍색이다. “생산 방식은 똑같지만, 원재료인 돼지 사육 방식이 달라요. 이베리코 하몽은 흑돼지를 4년간 방목해 키워 근육이 많은데, 프로슈토는 흰 돼지를 1년여 간 가둬놓고 키워서 지방이 많죠.”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돼지 넓적다리로만 생햄을 만든다면, 하몽은 돼지 발목까지 다리를 통째로 건조해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스페인의 국민 와인인 카바를 생산하는 코도르뉴 와이너리 내부 전경. 카바는 샴페인처럼 병에 넣은 상태로 숙성시킨다.
스페인의 국민 와인인 카바를 생산하는 코도르뉴 와이너리 내부 전경. 카바는 샴페인처럼 병에 넣은 상태로 숙성시킨다.

스페인 잔치상에는 카바

우리가 추석날 아침 정종을 마신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카바(Cava)를 마신다. 마카베오(Macabeo), 차렐로(Xarello), 파레야다(Parellada) 등 스페인 산 포도품종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 카바는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인 샴페인처럼 병에 넣어 숙성시킨다. 톡 쏘는 청량감으로 여름에 즐겨 마시지만, 전통적으로는 하몽처럼 잔치 음식에 곁들이는 술이다. 칠면조 구이나 바다가재 찜 등 주 요리나 디저트와 함께 카바를 마시는 것으로 스페인 크리스마스 만찬은 완결된다.

1872년 스페인 남부 페네데스 지역의 코도르뉴 와이너리 대표 호세 라벤토스가 스페인 최초의 샴페인 양조 방식을 도입한 것이 카바의 시초다. 1551년 만든 이 와이너리는 원래 레드 와인을 생산했지만 이 시기 포도밭 전체가 필록세라에 감염돼 황폐화되자 새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으며 카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 카바 와인의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이 페네데스 지역에서 생산된다.

샴페인보다 숙성 기간이 짧은데다 현대적인 설비로 대량생산해 샴페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카바의 장점이다. 요컨대 가성비가 좋아 국민 와인이 된 셈이다. 샴페인보다 과일향이 강하다. 숙성 9개월이면 시판이 가능한데, 숙성 기간에 따라 호벤(Jovenㆍ9개월 이상 숙성), 리세르바(Reservaㆍ15개월 이상 숙성), 그랑 르세르바(Gran reservaㆍ30개월 이상 숙성)로 등급이 나뉜다. 호벤은 10유로, 르세르바는 15~20유로 선이고 그랑 르세르바도 30~40유로면 스페인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호벤이 거친 거품의 톡 쏘는 맛이라면 르세르바, 그랑 르세르바로 갈수록 거품이 연해지고 크리미하다.

코도르뉴 와이너리의 다니 세구라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가장 대중적인 카바인 호벤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코도르뉴 와이너리의 다니 세구라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가장 대중적인 카바인 호벤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하몽 제조과정에 볼거리를 엮어 마을 전체를 관광자원으로 만든 기후엘로처럼 카바 역시 스토리텔링을 엮어 한창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코도르뉴 와이너리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건축가 가우디의 제자 호세프 풍그 이카타팔츠가 1895년 설계해 지었다. 특유의 ‘가우디 곡선’을 살린 건물 자체도 볼거리인데, 19세기 카바 제조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줘 한겨울에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코도르뉴 와이너리의 마케팅 이사인 빅토르 산체스씨는 “카바는 어떤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다. 호벤은 디저트, 과일과 어울리고 르세르바는 생선류와 닭고기 같은 가금류와 궁합이 잘 맞다. 그랑 르세르바는 리조또나 연어와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그림 612월이 되면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선 크리스마스 음식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한다. 하몽과 카바, 크리스마스 초콜릿 등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달콤한 디저트 투론으로 완성

스페인 크리스마스 음식의 정점은 디저트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크리스마스 페이스트리인 알파호르, 코코넛에 물엿이나 꿀을 넣어 뭉친 보야 데 코코 등 달콤한 디저트가 주를 이루는데 통상 커피와 어울릴 법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카바와 즐긴다. 꿀, 달걀흰자, 설탕을 섞어 가열한 다음 아몬드와 함께 버무린 투론은 본래 발렌시아 지방의 전통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스페인 전역에서 즐긴다. 외국 관광객들이 면세점에서 한 상자씩 살 정도로 유명해졌다. 우리가 설날에 강정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ㆍ마드리드= 글ㆍ사진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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